①신유정 결성농협 상무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신유정 씨는 초·중·고등학교 시절 줄곧 현대 무용을 했으나 대학 전공까지 춤으로 이어가진 않았고, 벌써 38년 차 직장인(결성농협 상무)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전통춤을, 그중에서도 승무와 살풀이춤에 흠뻑 빠져들게 됐는지 직접 만나 물어봤다.
“제가 결성농협 본점에서 금융책임자로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창구가 조금 밀리길래 그쪽에서 손님을 응대했어요. 약간 분위기가 색다르신 노부부께서 오셨는데 알고 보니 아내 분이 전통춤을 가르치는 분이셨고, 결성으로 귀촌해 교육을 하고 계시다는걸 알게 됐죠.”
직원과 손님으로서 우연히 마주한 이 만남이, 신유정 씨가 전통춤에 빠져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학창 시절까지 무용을 해왔으나,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오며 그는 오랜 세월 ‘춤’이란 세계를 잊고, 어쩌면 잃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께 제가 춤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됐고, 나중에 선생님께서 제게 춤을 가르쳐 보고 싶다고 하셔서 전통춤을 배우게 됐어요. 그때가 2018년 1월, 제 나이 마흔여덟이 됐을 때예요.”
신유정 씨는 그렇게 전통춤에 발을 들이게 됐고, 점차 춤에 대한 열정이 붙으면서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다. 바로 ‘장관상을 타보고 싶다’는 꿈이었다. 이후 그는 1년여간 매주 토요일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승무’를 배우기 위해 전라남도 광주와 홍성을 오갔다. 쉬지 않고 달린다는 전제에 왕복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말이다. 이윽고 그는 ‘제15회 대한민국 전통예술무용·연희대제전’에서 장관상을 받았다.
“전통춤이, 이쪽이 파면 팔수록 어떤… 계속 뭔가 끌어들이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전통춤에서는 역복식 호흡을 쓰는데, 쉽게 말해 단전 호흡의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렇기 때문에 현대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판이한 매력이 있어요.”
그의 스승은 다름 아닌 ‘명무(名舞) 김묘선’이다. 김묘선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이며, 승무전승교육사(이매방류)이다. 또한 세계화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승무를 추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에 승무 전수소를 갖고 있다. 신 씨는 이런 김묘선 선생에게 2018년부터 지금껏 승무를 배워오고 있다.
“장관상을 받기는 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제가 기본기도 완전히 체득되지 않은 상태에서 눈으로 보여주는 현상만 쫓아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호흡이나 발 디딤부터 제대로 밟아보자 마음먹고 요즘엔 기본을 견고하게 다지는 쪽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신 씨가 김묘선 선생에게 배우고 있다는 전통춤 ‘승무’는 춤의 구성이 체계적이면서도 춤사위가 다양하고 춤 기법 또한 독특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6박자의 염불·도드리와 4박자의 타령·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이 이어지며, 장단 변화는 7차례나 있어 춤사위가 각각 다르게 구분·정립되지만 분절된 느낌 없이 매우 조화롭다.
이에 더해 신 씨는 ‘살풀이춤’에도 매력을 느껴 한 달에 한 번씩 그리고 2~3일간 합숙을 하며 살풀이춤의 기본기를 습득하고 있다.
“화려하고 예쁘게 보이는 춤보다는 삶의 애환이나 고통, 감정선을 표현하는 춤이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승무와 살풀이춤에 완전히 매료된 거죠.”
그가 배우고 있는 또 다른 전통춤인 ‘살풀이춤’은 손에 든 하얀 수건을 통해 멋스러움과 감정(한恨·넋魂)을 표현하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이중적 매력을 갖고 있다. 이 춤에는 ‘살풀이장단’이라는 독특한 무악 장단이 쓰이며, 이러한 가락과 함께 슬픔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한다.
기자는 살풀이춤의 특징 중 ‘이중적 매력’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이에 신유정 씨는 “전통춤에서는 ‘대삼소삼(大衫小衫)’ 호흡을 기반으로 춤을 추거든요. 여기에서 ‘삼(衫)’은 저고리 소매를 뜻해요. 예를 들어 ‘대삼’에는 호흡을 크게 하니까 소매가 크게 흔들리고, ‘소삼’에는 비교적 작게 흔들리거든요. 그런 모습을 남성적·여성적 매력이 공존한다고 말한 게 아닐까 싶어요”라고 말했다.
신 씨의 말마따나 전통춤에서의 ‘대삼소삼’은 호흡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면서 춤의 강약, 높고 낮음, 역동성과 조용함 등의 상호대립적 성질을 나타냄과 동시에 호흡의 기법과 결합해 춤에서 다양한 질감과 변화를 나타나게 한다.
신유정 씨는 승무로 시작해 살풀이춤까지, 8년째 전통춤의 세계에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승무 이수자 자격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훗날 60대 정도가 되면 조그맣게 연습실을 내서 한두 사람이라도 오게 되면 춤 가르쳐 가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이 있어요. 그런데 뭐 못한다 치더라도 이렇게 제 삶에 있어 춤이라는 게 들어와 제 삶에 있는 공백, 공허를 메꿔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신유정 씨처럼 무언가에 몰두해 깊이 빠져본 일이 있다면, 그때 자신이 얼마큼 가득 찬 인간이었는지, 얼마나 살아있음을 느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좀, 멋지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