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듣고 보는 곳으로 쓰이고 싶어요"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홍주신문>에서 올해 처음 소개하는 멋집 ‘사대삼십육대구(대표 박재범)’는 화면 비율 4:3, 16:9를 한글로 적은 것이며, 4:3에서 16:9로 전환될 때 느껴지는 ‘해방감’을 나타냄과 동시에 공간의 정체성을 뜻하기도 한다.
사대삼십육대구는 지난 875호에서 소개했던 튜베어(맛집)와 나란히 붙어있다. 홍고통 좁다란 골목, 옛 청운관 빨간 간판 아래 사대삼십육대구와 튜베어가 반씩 자리한 것이다. 튜베어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날 저녁, 사대삼십육대구의 통유리 너머를 한동안 바라봤다. 책에 파고든 몇 사람이 보였고, 침묵하며 감각하고 있는 그들은 비밀리에 사유하고 있었다. 그리 짐작했다. 바깥에서 지켜보는 자의 눈엔 아름다움이 투영됐다. 흔연한 첫인상이었다.
사대삼십육대구의 박재범 대표는 영화 연출을 전공했으며 그에게 홍성은 낯선 지역이다. 그는 어떤 계기로 인해 부여에 1~2년간 거주하며 홍성지역 친구들을 알게 됐고, 홍성에 내려와 DIT 수업(홍성도시재생사업)을 들은 뒤 ‘사대삼십육대구’를 꾸리게 됐다.

박 대표는 “문화예술 분야가 제 전공이자 업이었기 때문에 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독립 서점을 운영해 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홍성에 독립 서점이 없다는 점 또한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렇게 지난해 10월, 박 대표에게 낯선 지역인 홍성에서, 홍성인들에게 낯선 공간인 독립 서점 ‘사대삼십육대구’가 문을 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쓰는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며 “공간 인테리어에 있어서는 ‘해방’을 주제로 정한 뒤, 가장 해방이 필요한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박 대표는 ‘직장-사무실’이 떠올랐고, 사대삼십육대구의 실내엔 네 개의 책상과 의자가 놓이게 된다. 나란히 놓인 2개의 책상과 의자는 또 다른 2개의 책상과 의자를 등지고 있다. 이러한 배치가 무척 인상적이다. 단절된 듯 연결된 모양새가 마치 일련의 시퀀스(영화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독립적인 구성단위)처럼 느껴진다.
방문객들의 반응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표는 “일반 서점에서 구경할 수 없는 책들이 있어 좋다는 분들도 계시고 반대로 일반 서점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어렵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계시다”며 “책에 대해 직접 설명해 주니 편하고 좋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홍성에서는 어떤 공간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낯설다 또는 반갑다고 말해주시는 손님들도 계시고 의견이 제법 다양하다”고 말했다.
현재 박 대표는 영화 관련 작업을 종종 이어오고 있으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하곤 연중무휴 체제로 독립 서점 운영에 몰두하고 있다. 사대삼십육대구는 잠기운과 아침의 피로를 어느 정도 떨쳐냈을 시각인 오후 1시에 문을 열어 오후 7시까지 불을 밝힌다.

기자도 꽤나 독서를 좋아하는, 읽는 사람으로서 서점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단 2권을 빼곤 모두 처음 보는 책들이었다. 일순 영역을 넓힐 수 있겠단 기대 섞인 기쁨으로 마음이 일렁였다. 박 대표에게 서점에 둘 책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그 기준을 물었다.
“되도록 제가 봤던 책들을 두려고 해요. 개인 취향이 많이 묻어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손님들께 책에 관한 설명도 해드릴 수 있는 거죠.”
지난해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대삼십육대구를 비롯한 책이 있어 좋은 곳과 젤라부 등 홍고통 골목의 세 군데 상점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홍성골목영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를 진행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박 대표는 사대삼십육대구가 공사 중에 있을 때 본인이 만든 영화를 지인들과 함께 보던 밤, 밖에서 안을 바라보며 ‘어둠이 내린 낡고 허름한 동네에 이렇게 불이 켜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오픈하고 얼마 안 됐을 때라 홍보를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 번 더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사대삼십육대구에서 장기적인 독서 모임 또한 추진해 볼 예정이라고 한다. 머잖아 이곳 사대삼십육대구에는 책을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이다.
사대삼십육대구에는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네 개의 책상과 외관의 통유리와 맞닿아 있는 또 하나의 책상까지 모두 다섯 개가 있으며, 그 위엔 각자 다른 장르의 책들이 놓여있다. 소설부터 영화에 관련된 서적들과 에세이, 시집 그리고 노란 붙박이 책장엔 대표의 개인 소장 책들까지 구경해 볼 수 있다. 책을 가져와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나 독립 서점 내에 비치된 모든 책은 판매하는, 구매 가능한 도서이고 간단한 식음료 반입도 가능하다.
기자는 사대삼십육대구에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소설 <셰리>와 영화 잡지 <매거진필로(2024년 3/4월호)> 총 2권을 구매해 1시간 남짓 읽고 머물렀다. 셰리는 박 대표에게 추천받아, 매거진필로는 평소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 포스터가 표지로 돼 있어 보는 즉시 감응돼 구매하게 됐다.
원뿔 모양 인센스 콘이 희뿌연 꼬리를 만들며 향기를 펼친다. 널따랗게 인디 음악이 흐르고 이윽고 한국어 가사와 번역된 글자가 조화롭게 뒤섞인다. 점차로 배경은 어슴푸레해지고 글자의 행렬로부터 종속된 장면이 재생된다. 그렇게 읽는 자는 공간 국경 자아를 순서대로, 기분 좋게 잃는다. 글을 읽는다는 건 한마디로 사라지는 것이며, 개인의 머릿속이라는 상영관에서 유일무이한 필름을 재생시키는 것과 같다. 그 안에서 흩어지고 파괴되고 기뻐하고 엉엉 울면서 첨예하고도 유연한 무엇들을 훔친다. 나아가 읽는 행위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다. 티 내지 않으면서도 격렬하게 살아가도록, 몰래 아름다워지도록.
아쉬움을 역력하게 묻히고 손잡이를 밀고 나올 때, 한 시간 동안 읽어 들인 글자가 바람과 함께 내게 왔다 도로 멀어진다. 내게로 허공으로 번갈아 오가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가버린다. 바람따라 몸부림치는 머리카락에선 절에 다녀온 듯한 향내가 진진하다. 아득함이 밀려온다.

■번외 질문.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감독이 궁금해요.
“작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 소설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작가는 잘 모르겠어요. 한국 감독 중에는 이창동 감독님을 제일 좋아해요. 극 이야기 자체는 소설 같은데 영화로 풀어내는 방식이 억지스럽지 않아 가장 좋아해요. 감독의 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초록물고기’입니다.”
◆사대삼십육대구
ㆍ주소: 충남 홍성군 홍성읍 조양로143번길 36
ㆍ영업시간: 오후 1시~오후 7시, 연중무휴
ㆍ전화번호: 0507-1370-5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