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웹툰 작가 ‘마젠타블랙’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홍성에 거주한 지 10년가량 됐다는 웹툰 작가 ‘마젠타블랙(본명 오은좌)’을 만나 그림과 아버지(故 이외수 소설가)에 관한 단 두 개의 편린에 대해, 서글플 만치 호젓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다
만화는커녕 그림조차 배운 적 없다는 마젠타블랙은 그저 어린 시절부터 죽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꿈이었어요.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으셔서 몰래 그리곤 했는데요. 대학도 어머니의 바람에 맞춰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꾸역꾸역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와 결국 만화 쪽으로 폭넓게 시도하게 되더라고요.”
만화가가 꿈이었던 그가 어머니의 바람에 맞춰 잠자코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것은, 만화 작가라는 업에 있어 국어국문학이란 학문이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 생활 1년 반가량 만에 휴학을 결정했고, 끝내는 제적을 당하고 만다. 이후 그는 웹툰 관련 일자리를 구했고, 군대에서 제대한 뒤에도 웹툰 그리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그는 서서히 웹툰이라는 세상에 빠져들게 됐다.
“그동안 제가 참여한 작품은 총 5개예요. 드레곤빌리지라는 모바일 게임 공식 웹툰 2편과 지금은 없어진 사이트지만 코믹 GT라는 곳에서 ‘카멜리아’라는 웹툰을 했었고요. 또 폭스툰에서 ‘엘카림이 들어줄게’를, 끝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됐던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를 시즌 3부터 담당했었죠. 이 작품의 경우 3년간 1주일에 1회 업로드했는데, 이때 온 번아웃 증후군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 혹독한 현실과의 마찰
기자가 마젠타블랙과 처음 연락이 닿은 건 지난 1월이었다. 그는 메신저를 통해 “현재 작품 활동이 멈춘 상태인데,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신문사에 누가 되는 게 아닌지” 물었고, 이후 마젠타블랙을 처음 만난 건 지난달 17일, 마주 앉은지 얼마 안 돼 그는 지난번과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지난해에 예술활동지원금을 신청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결국 파괴됐고, 마지막 연재가 벌써 3년 전이에요. 작가로서 정체기에 있는 상태인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더군다나 현재 생활고로 인해 웹툰을 포기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거든요.”
자연의 시간은 사계(四季)로 흐르고 그 아래 뿌리내린 나무는 개화(開花)와 낙화(落花), 결과(結果)라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순환된다. 뙤약볕 아래에서, 폭풍우 속에서, 맹렬한 추위를 견디면서. 인간의 삶은 자연의 섭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 좋고 나쁨을, 절망과 환희를, 희망과 좌절을 셀 수 없이 겪으며 늘 과정에만 존재한 채 불완전한 상태로 머물다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살아있음’은 행위하는 자의 것이며, 자각하며 인내하는 자는 이윽고 매력적인 형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故 이외수 혼외자라는 그늘 아래에서
지난 2013년에 있었던 양육비 소송 건에 의해 故 이외수 작가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마젠타블랙(본명 오은좌)’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생애 단 두 번밖에는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립다고 말했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그리고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 한 번, 이렇게 두 번 뵀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 뵌 건 워낙 어린 나이여서 기억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고요. 두 번째로 뵀을 때도 아버지께서 말씀을 못하시는 상태라서 그냥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는 별다른 표정 없이,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기자는 조심스레 그동안 살아오면서 대상이 있고 없는, 분노와 원망 따위가 많지 않았는지,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고 지내왔는지 물었다.
“감정이 휘몰아친 적… 굉장히 많죠. 아주 오랫동안 삭히며 살았어요. 아버지의 부재, 마땅히 받아야 했을 사랑(父情)에 대한 결핍, 사무치는 그리움 이런 것들로부터 많이 괴로웠어요. 이런 이유로 병원(신경정신과)에 다닌지 1년정도 됐어요. 지금은 많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 중이고, 예술 쪽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잘 다듬어야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가끔 버거울 땐, 방안의 조도를 낮추고 빗소리를 들어요.”
아버지라는 ‘빛’은 단 두 번의 만남으로 스쳐 지나며 아들에게 그늘을 드리웠고, 지나치게 오래간 억누른 인내는 결국 득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지금’에서 마젠타블랙은 역설적이게도 ‘영원성’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기 마련이므로.

■ 흔들리는 채로 나아가다
현재 그는 작품 활동 정체기에 있으며, 생활고로 인해 웹툰을 포기해야 하나 고심 중에 있다 밝혔었다. 그러나 이 말과는 상반되게, 마젠타블랙은 매일 최소 6시간에서 최대 8시간가량을 웹툰 그리기에 매진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제대로 배운 사람들을 뛰어넘으려면, 지금에라도 기본기를 꾸준히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림그리기와 웹툰 그리기는 달라요. 웹툰은 빨리 그려내야 하기에 아무래도 시간에 쫓겨 그림의 질이 약간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그 부분을 보완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언제나 어중간했거든요. 절대 타고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생 때도 미술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그저 몰래몰래 많이 그렸어요. 아마도 학창 시절에 좋아하는 마음으로 거듭 그려왔던 시간들이 현재에 보탬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마젠타블랙의 이야기를 듣는 기자의 머릿속엔 몇 명의 인물과 그들의 작품이 스쳐 지나갔다. 밥과 휴지를 짓이겨 만든 이응노 화백의 옥중 작품이, 재료가 없어 담뱃갑에 있는 은지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 화가의 은지화가, 갖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붓을 내려놓지 않은 프리다 칼로의 수많은 작품들이…. 이들의 삶과 작품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절실한 의지는 불가능을 박살 낼 수 있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