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하다 칼큼하게, 한 그릇에 담긴 두 가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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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하다 칼큼하게, 한 그릇에 담긴 두 가지 맛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5.03.13 08:40
  • 호수 881호 (2025년 03월 13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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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신문이 추천하는 맛집] 〈13〉 예산읍 ‘고향국수’
추억을 소환하는 맛과 분위기
 기자 추천 메뉴 잔치국수.

[홍주일보 예산=이정은 기자] 키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겨운 인상을 주는 예산 신례원의 중심지, 신례원역 인근에 자리한 ‘고향국수(대표 김경숙)’는 우연성과 기자의 취향이 더해져 들르게 된 식당으로, 분위기와 맛에 있어 기대 이상의 정취를 느꼈기에 이번 호 <홍주신문>이 소개할 맛집으로 결정하게 됐다.

기자는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들르게 된 신례원이라는 낯선 동네에서 점심 끼니를 때워야 했다. 어설픈 허기엔 국수가 딱인데, 생각하며 양 엄지손가락으로 ‘신례원 국수’를 입력했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래로 누구든 이 순서를 거치지 않는가? ‘잔치국수가 맛있어요’, ‘사장님이 친절해요’, ‘좋아요’, ‘잘 먹었습니다’ 등 10개 남짓한 리뷰를 몇 초 만에 읽어 들인뒤 비로소 발걸음을 옮긴다.

국수 그림에 ‘고향국수’라 적힌 간판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웬걸, 아는 냄새가 나질 않는다. 고기든 멸치든 익히 알고 있는 그 육수 냄새 말이다. 신발을 벗고 빈자리로 걸어가며 자연스레 식사하고 있는 테이블에 시선이 닿는다. ‘뭐지? 뚝배기 공깃밥 김치?’ 의아한 표정이 돼서는 메뉴판을 찾는다. 국숫집인 줄로만 알았던 이곳엔 국수를 포함해 모두 14가지 메뉴가 있었다. 다음 순서는 ‘고민’이다. 다시금 식사 중인 테이블로 눈길을 돌린다. 그제야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 세 분이 된장찌개와 청국장을 드시고 계셨다. 

그러나 간판이 ‘고향국수’인 이유가 있을 터, 신중하고 빠르게 기자는 잔치국수를 동행자는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무김치와 배추겉절이 그리고 콩나물무침과 다진 고추가 나왔다. 국수를 주문했는데 콩나물무침은 뭘까, 하는 찰나 보리밥이 놓인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마다 고추장과 참기름 통이 놓여있다. 슥슥, 한데 뭉쳐있어 흩트려야 하는 콩나물과 열무김치와는 반대로 석석, 보리밥은 알알이 따로 논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두르고 최대한 따로인 듯 하나 되게 잘 버무려 한입 가득 넣어본다. 음, 그저 그렇다. 이 맛은 마치 전혀 필요 없는 선물을 받았으나 선물해 준 이의 마음이 고마워, 그 마음으로부터 발현된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과도 비슷하다.
 

보리밥.
보리밥.

꼭꼭 씹어 보리밥을 비워내는 중에 국수가 나왔다. ‘이걸 어떻게 다 먹나’하는 생각이 불쑥 끼치는 엄청나게 푸짐한 양이다. 잔치국수가 담긴 이 그릇은 일순 바다 풍경과도 중첩됐는데, 면발은 수면 위로 솟아오른 바위처럼 우뚝하고, 그 위에 올려진 애호박, 당근, 계란 지단은 바위에 달라붙은 따개비처럼 보였다. 이렇게 느낀 까닭은 아마도, 육수에서 잔잔히 피어오른 바다 내음 때문일 것이다. 아, 거기에 흡사 옛 포장마차에서 팔던 어묵 꼬치 한 덩이까지 올려져 있다. 또다시 ‘대체’ 이걸 어떻게 다 먹어,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추측은 설핏 스치다 사라질지도 모를 불분명이다. 국물을 한 입 떠먹곤 곧장 ‘아, 이거 다 먹을 수 있겠는데?’ 조용히 변덕을 부리게 됐으니 말이다. 이어 “맛있다”라고 소리 내면서 변덕은 확신이 된다. 그리고 정말로, 다 먹었다.

기자는 김경숙 대표에게 제일 먼저, 육수에 대해 물었다.

“일단 저는 아침에 오자마자 육수부터 올려요. 잔치국수용 육수는 멸치, 디포리, 다시마, 건새우, 무, 양파 정도 넣고 우리고요. 바지락 칼국수용 육수는 소 잡뼈를 넣고 뽀얗게 우러나올 때까지 끓여요. 저는 바지락 칼국수엔 멸치 육수보다 뼈로 우린 육수가 더 맛있더라고요.”

여기에 하나 더, 희멀건 연둣빛을 띠는 다진 고추는 잔치국수의 맛을 확실히 변신시켜 하나의 묘수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즉, 한 그릇을 통해 두 가지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모두 맛있음으로 귀속된다.

기자가 반해버린 이 다진 고추는 김 대표가 직접 농사지은 청양고추를 1년간 소금에 절군 것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이지’를 담그는 방식과도 같다.

“맞아요. 오이지 담그는 거랑 똑같아요. 그렇게 해서 손님상에 올릴 땐, 물에 헹구고 물기를 꼭 짜낸 다음 다지는 거죠. 파와 고추는 제가 농사지은 걸 사용하고요. 다른 식재료는 전부 직접 장 보고 있어요.”

허기를 채운 손님은 아니, 정확하게는 배가 터질 듯한 손님은 이제야 천천히 실내를 살핀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이름 모를 장소가, 90년대가 떠오른다. 생생한 꿈이었는지 실제로 갔던 곳인지 헷갈리는, 흐리멍덩한 추억이 소환된다. 세월을 묻힌 채 정갈하게 가꿔진, 한 마디로 정감 가는 그런 곳이다.

김 대표에게 음식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무엇인지 물었다.

“첫 번째는 청결이고 그다음이 맛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취향이 요즘 음식 스타일보단 옛날 음식 쪽이라 아무래도 옛날 방식대로 만들고 있어요. 김치도 어머니께 배운 그대로 하고 있고요. 그리고 뭐 특별히 비법이랄 것까진 없지만, 장사하며 터득한 것 중 하나는 양념장 종류는 무조건 숙성시킨다는 거예요. 냉장고에서 1주일간 숙성시키면 바로 만든 것과는 차원이 다른 풍부한 맛이 나더라고요.”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 비빔국수.

잔치국수에 홀려 기자와 동행한 이가 맛본 비빔국수에 대한 설명을 빠트릴 뻔했다. 비빔국수는 숙성된 고추장 양념에 양배추, 오이, 당근, 김 가루, 깨가 버무려진다. 비빔국수용 고추장 양념에는 매실과 사과, 양파 등이 들어가며 앞서 김 대표가 말했듯 1주일간 숙성을 거친 뒤 사용된다. 잔치국수를 먹다 한 입 뺏어 먹어본 비빔국수는, 고작 한 입이었기에 정확하게 맛을 표현하는 데 무리가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잔치국수와 대조되는 맛이기에 오히려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 본론으로 돌아가, 비빔국수는 그 무엇도 두드러지지 않는 유연한 맛이었다. 보통 쫄면이나 비빔국수류는 새콤달콤한 맛에 매콤함이 더해지게 되는데, 그중 무엇도 확 튀지 않는, 서로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한 맛이었다.

김 대표에게 가장 자신 있는 메뉴에 대해 질문했을 때, 기자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일단 메뉴판에 있는 것들은 제가 맛있게 할 수 있겠다 싶어 넣게 된 음식들이에요. 그중에서도 바지락 칼국수와 동치미국수가 제일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손님들께서 일부러 이 메뉴를 드시러 찾아오시기도 하고, 읍내 나왔다가 생각나서 들렀다고도 하셔요.”

대개 많은 식당에선 동치미국수와같이 차가운 음식들은 계절 메뉴로 여름에만 판매하곤 하는데, 고향국수에서는 난로가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는 계절에도 동치미국수를 맛볼 수 있다. 기자는 종종 고향국수 때문에 신례원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될 것만 같다.
 

고향국수 김경숙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
고향국수 김경숙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

◆고향국수 메뉴

<식사류> 
△바지락 칼국수 8,000원 △비빔국수 8,000원 △잔치국수 8,000원 △감자수제비 8,000원 △된장찌개 9,000원 △쫄면 9,000원 △동치미국수 9,000원 △떡만둣국 9,000원 △청국장 9,000원 △육개장 11,000원 △갈비탕 11,000원 

<안주류> 
△제육볶음 25,000원 △닭볶음탕 60,000원 △사태고추장찌개 30,000원


ㆍ주소: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례원로 203
ㆍ영업시간: 오전 8시 ~ 오후 8시
ㆍ전화번호: 041-33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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