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살림연구소장
칼럼·독자위원
우리나라에 극단적인 충격을 준 12·3 계엄사태가 9부 능선을 넘고 있다. 하루빨리 상황이 일단락돼 그동안 미뤘던 각종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예비비 삭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2025년 예산안에서 전년도보다 6000억 원을 증액한 4조 8000억 원을 편성한 예비비를 야당이 절반인 2조 4000억 원으로 삭감해서 국가 본질 기능이 훼손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왜곡이다. 관행적으로 예비비를 과다 편성하는 예산 편성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국회에서 예산이 확정 의결되지도 않았다. 예산증액권이 없는국회로서는 예산 증액에 관한 정부의 동의 절차를 받아 의결하기 위해 최종 의결을 10일간 연장한 상태였다.
헌법 제52조, 제54조, 제61조는 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권한으로 입법권과 예산심의권, 국정감사라는 3가지 기능을 부여했다. 이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본 원리다. 따라서 삭감하는 예산심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 더군다나 예비비는 용도가 정해지지 않았고 ‘예측할 수 없는 지출’에 사용되기 위한 그야말로 비상금이다. 따라서 이 삭감이 정부 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예비비와 국채이자 삭감액은 전체 삭감액의 70%에 이르고, 최종 확정안에서도 54%를 차지하고 있다. 2025년 예산안, 정부 삭감사업과 국회 삭감 사업 정량 비교 분석 보고서에 정부안에서의 전년도 대비 삭감과 국회 삭감에 대해 분석해 놨다.
예비비 문제는 집행률과 정보공개에 있다. 첫째, 집행률 문제다. 2024년에도 예비비 집행률은14.3%(11월 기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예비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목적예비비의집행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2023년에도 7.6%에 불과하다. 목적예비비는 재난 등에 대비하는 용도가 포괄적으로 지정된 예비비다. 그런데 이미 중앙정부에 행안부 등 25조 원 가량의 목적예비비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에도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 등에 4조 원 이상이 재난안전의 예방과 복구를 위해 적립돼 있다.
이외에도 모든 지자체는 예비비가 책정돼 있으며, 이중 목적예비비는 1% 한도를 초과해서 편성하는 곳들도 많다. 따라서 예비비가 부족해서 비상시에 사용할 돈이 모자라는 일이 생기기는 어렵다.그렇기 때문에 과다편성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023회계연도 전국 지방자치단체 예비비 현황 분석에 따르면 3.9조 원이 넘는 돈이 잔액으로 남아있으며, 48개 지자체는 지방재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예비비를 가지고 있다.
둘째는 용도의 문제다. 왜 이렇게 집행도 못하면서 예비비를 편성하고 쿠데타의 이유로까지 등장하게 됐을까? 그것은 예비비는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사용하고 결산에 그 결과를 보고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2023년에도 정상외교 예비비를 328억 원 편성했는데, 본예산 248억 원보다 많았다. 정상외교를 예측할 수 없어서 급하게 추진할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특수활동비로 경호강화사업을 하는 등예비비 용도로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예비비의 최종승인권자인 대통령이 국가비상금인 예비비를 대통령 본인을 위한 사업에 사용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셋째는 투명성 문제다. 예비비는 사용하고 나면 다음 해 5월 결산 때까지 사용내역을 알기 힘들다. 따라서 뒤늦은 지적은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정부가 마음먹으면 쌈짓돈으로 사용하기 좋은 비상금인 것이다. 승인받을 필요도 없고 공개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 예산이겠는가.
예비비는 그야말로 예측하지 못하는 수요에 대해 시급성을 이유로 승인 없이 사용을 하도록 허가한 돈이다. 하지만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 알려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해외에서도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면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예산전용은 승인사항이 아니지만 분기별로 상임위원회와 예결위원회에 그 내역을 제출하고 있다. 예비비라고 그 정도도 공개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지방자치단체도서울, 부산, 경기, 강원 등에서 승인은 아니지만 분기별로 예비비 사용 내역을 미리 제출하고 있다.
일단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국민이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집단지성으로 판단하는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 예비비 사용계획명세든 사용명세서든 공개가 돼야 한다.
그리고 반복적인 예비비 편성과 집행을 막을 수 있어야 헌다. 그래야 한 푼이라도 낭비됨이 없이, 노는 돈 없이 효율적으로 나라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