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임환철 화백
독학으로 들어선 문인화의 세계에서 덜컥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50년간 문인화를 그려오고 있는 봉석(峯石) 임환철 화백은 아직도 먹의 조화에 가슴이 들뜬다고 한다.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오늘날의 문인화는 ‘동양화’가 ‘한국화’라는 명칭으로 바뀐 뒤, ‘한국화’가 ‘한국화’와 ‘문인화’로 나뉘게 되면서 생겨난 명칭이다. 한국화는 주로 한국의 자연·역사·문화를 소재로 하며, 한국의 전통적 미의식인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중시한다. 반면 문인화는 철학적·문학적 의미를 강조하며 자연을 소재로 한 산수화가 주를 이루고, 수묵담채(水墨淡彩) 기법을 사용한다.
봉석(峯石) 임환철 화백은 1951년 홍동 태생으로 50년째 문인화를 그려오고 있으며, 그림 옆에 곁들여지는 시 형식의 화제(畵題)를 쓰기 때문에 서예에도 능할 뿐만 아니라 작품에 찍히는 낙관 또한 직접 서각하고 있다.
그는 대략 40여 년 전, 천안의 한 도자기 회사에서 디자이너(디자인과장)로 활동하다 순수 미술인 문인화로 전향하게 됐다.
“어느 날 천안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표구사(화랑)가 눈에 들어왔어요. 국화가 그려진 한국화가 걸려 있는데 풍경이 너무나도 멋있어서 마음에 확 와닿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화 특유의 그 분위기는 서양화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거든요. 먹색에 완전히 사로잡힌 거죠. 그때 ‘저걸 배워야겠다’ 생각했어요.”

임환철 화백은 당시 도자기 회사에 다니면서 1년가량 독학으로 한국화를 연습했고, 충남에서 주최한 ‘노동문화제’에 출품하게 된다. 그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하게 되고, 동일 작품이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서 ‘정주영 경제인 연합회장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기자는 임 화백이 언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은 미술학원이 있지만 제 어릴 적엔 그림을 가르치는 곳은 없었어요. 국민학생 때 선생님이 그림을 잘 그린 학생들 것만 교실 뒤에 붙여두곤 했는데, 거기에 항상 제 그림이 걸렸어요. 군에서 열리는 그림 대회에 나가서 수상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소질이 좀 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임 화백은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와 십군자(매화, 대나무, 난초, 목련, 모란, 연꽃, 파초, 포도, 소나무, 국화) 모두 멋있지만, 특히 매화를 그릴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한다.
“매화 한 가지에서도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매화는 겨울에도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이 있는 꽃이죠. 그래서인지 매화를 그릴 땐 특별히 더 잘 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제 스타일을 살려 그리게 됩니다.”
작업을 할 때 먹색이 잘 나오면 아직도 기분이 들뜬다는 임 화백은 먹의 농담에서 나오는 조화가 마음을 울린다고 말한다.
“저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그립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물론 그리지만, 자연 그대로를 그리면 작품성이 없어집니다. 즉,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게 되면 되레 본질이 사라지거든요. 사람들은 복잡하게 전부 그려내려고 하는데 그건 욕심입니다. 부가적인 것들을 쳐내고 단순하게 그려내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문인화입니다. 그리고 문인화는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으면 그릴 수 없습니다. 가급적이면 모든 사물을 축소해 여백의 미를 살리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서양화와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 화백은 15년 전부터 충남도립대학(청양 소재) 평생교육원 강사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벼루와 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화실 ‘연묵회(홍성읍)’를 꾸려 10명 남짓한 회원들과의 유대를 이어가고 있다.
“꾸준히 제자를 양성 중이고 현재 프로급이라고 볼 수 있는 제자들은 10명 정도 배출했습니다. 앞으로 5년 후쯤, 제 나이 80세 때는 개인전을 열 생각입니다.”

화실 ‘연묵회’에서 만난 임 화백의 제자 김경숙 씨는 오는 5월 문인화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저는 광천에 살고 있어요. 30년 전 광천 자모회 수업을 통해 임 화백님으로부터 문인화를 접하게 됐어요. 그때 처음 그려본 건데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하게 됐어요. 저도 이제 어엿한 화백이라고 할 수 있죠. (호호) 노인복지회관에서 17년째 가르치고 있거든요.”
잘 그린 문인화란 뭘까? 임 화백은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선 무조건 붓을 들고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얻게 된 ‘필력’은 한 마디로 그림에 표출되는 힘을 말한다. 그것이 그림에 묻어나야만 잘 그린 문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잘 그린 문인화를 보게 되면 화선지에 담긴 대상이 한눈에 확 와닿습니다. 대상의 특징을 잘 담아내야 하죠. 먹색과 그림의 구도, 화면의 조화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야 하고요.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소요 시간이 짧다고 또는 길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얼마나 잘 담기느냐 그게 중요한 겁니다.”

무언가에 몰두했을 때 우리는 번뇌와 잡생각 따위를 잊곤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어떤 행위를 멈췄을 때이다. 쓰잘머리 없는 것들이 사라졌었다는 것을, 나아가 거기엔 ‘나’라는 존재 의식까지도 포괄됐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유의미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망각하고 사라져야 한다. 그렇게 비워내야 한다.
임 화백은 화선지와 붓을 도구로 변함없이 행복과 희열을 감각한다 말했다. 그의 그림에 담긴 것은 무엇일까. 화선지에 담긴 사물과 여백이, 있고 없음이 힌트가 될 것이다.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보는 이들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