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들, “홍주읍성 내 모교,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파”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홍주초등학교(洪州初等學校)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79년 전인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성읍내의 지방유지 인사들은 이 고장에 홍성공립국민학교(홍성초)밖에 없다는 데 아쉬움을 느껴 또 하나의 학교를 설립하고자 1946년 6월 홍성제2공립국민학교설립기성회 창립총회를 열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후 같은 해 10월 31일 비로소 ‘홍성제2공립국민학교(홍주초)’가 개교하게 된다.
총설에 따르면 ‘홍성제2공립국민학교’는 홍성 시가의 서북쪽에 자리 잡아 동쪽은 홍성 시가가 전개되며 서쪽으로는 옛 성벽이 학교의 둘레를 감돌며 서산사로를 거쳐 가까이 백월산(白月山)이 있고, 남쪽으로는 홍성군청과 접해 남산공원의 노송(老松)이 바라보이고 멀리 오서산(烏棲山)이 우뚝 솟아있으며 북쪽은 서산에서 군산을 통하는 도로가 가로 놓여 가옥이 즐비하게 늘어서며 암석이 흘립(屹立)한 용봉산(龍鳳山)을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지형적 이점을 갖춘 홍주초등학교는 홍성 복판에 자리해 김조순, 이성진 등 다수의 양궁 국가대표를 비롯한 총 1만 113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네 번째 홍주초 교단에 선
정관호 홍주초등학교 교장

오는 8월 정년을 앞둔 정관호 교장은 37년간의 교직 생활 중 홍주초등학교와는 벌써 4번째 연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우리 홍주초등학교는 예전 선생님들부터 예체능 교과에 특별히 힘쓰던 학교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양궁, 사물놀이, 합창, 가야금 등이 있어요. 홍성군의 양궁 발전이 바로 홍주초에서 시작됐다고 보면 됩니다.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이 강조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교육입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저는 곧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 홍주초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면서 학생 수가 늘어나게 되면 쇠퇴했던 문화예술 각종 분야를 부활시키고 강하게 키워나가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우리 전통을 지키는 사물놀이도 물론이고요. 그리고 체육 활동 또한 중요하죠. 아이들 저마다의 성향과 소질에 맞춰 다양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가능케 하려면 많은 부분이 필요하겠지만,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과 아이들을 지도하고 통솔할 열정 있는 교사 분들이 있어야겠죠. 아무쪼록 내포로 이전하게 되면 침체된 문화 활동 부분이 다시금 부활해 나날이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75년여 전의 기억이 ‘생생’
제4회 졸업생 이관호 동문

이관호(89) 씨를 만나 졸업앨범조차 없던 홍성제2공립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에는 홍성제1초등학교(홍성초)에 입학했다가 해방되면서 지금의 홍주초로 이동해 우리나라 말, 한글을 배우게 됐어요. 우리 때는 교실이 없었어요. 창고식으로 된 공간에 60명씩 정말 복작복작하게 앉아서 수업 듣고 그랬죠. 당시 교장선생님이 이용성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이 홍주국민학교라고 개명을 했어요. 그리고 모든 교과를 한 선생님께 배웠어요. 장현철 담임 선생님… 아직도 얼굴이 선하게 기억나요. 또 현재 강당이 있는 자리엔 홍성군청 여하정에서부터 연결된 연못이 있었어요. 연잎이 가득했고, 여름이면 연꽃이 활짝 얼굴을 내미는 운동장 반만한 규모의 큰 연못이었어요.”
곰곰 까마득한 과거를 더듬는 그의 얼굴은 마치 유유히 흐르는 강물 같았으며, 아득한 기억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릴 때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윤슬처럼 반짝였다.
“홍주초등학교가 없어지는 줄 알았어요. 처음엔 도저히 갈 곳이 없다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졸업생 여럿이 힘을 합쳐 백방으로 노력하면서 내포에 만들 자리가 있다고, 내포로의 이전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전통 있는 모교의 역사를, 홍주초의 명맥을 잇게 된 것에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세월따라 작아진 나의 ‘모교’
제27회 졸업생 이용재 동문

홍성에서 나고 자랐다는 홍성 토박이 이용재 씨(65)를 만나 홍주초 교정을 둘러보며 그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사라지고 새로이 생겨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이 오후 3시가 넘었는디 운동장에 애들은 없고 어째 자가용이 더 많네유. 다들 학원 다니고 그래서 그런가. 우리 때는 지금 여기 주차장 자리에 플라타너스 나무가 균일한 간격으로 나란히 심겨 있었슈. 또 보니께 지금은 3층 벽돌 건물인데 그때는 2층 시멘트 건물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돼 있었쥬. 반마다 조개탄 난로 때니께 연통이 밖으로 나와 있어구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건물 외벽에 있어서 거기로 다녔슈. 친구들이랑 난간 타고 미끄럼 타서 내려오고 그랬는디… 학교가 참 넓고 높게 느껴졌었는디 이상허게 내가 커진 게 아니라 학교가 작아진 거처럼 느껴지네유. 구루마 끌고 지나가는 등 굽은 우리네 어머니들마냥 세월로 작아진 것처럼 그렇게 느껴져유. 가만있어봐, 학교가 거나 80년 됐으니께 그렇게 보이는 것도 이상하진 않네유.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내포로 이사 간다고 허니 서운하긴 혀도 없어지는 건 아니니께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쥬. 내포로 옮겨도 옛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겄슈.”

30년 교문을 지켜온 ‘남양문구’
학교 이전과 함께 역사 속으로

홍주초등학교 앞에서 32년가량 ‘남양문구(문구점)’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댁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아마 1993년 무렵, 그쯤이었을 거예요. 그때쯤 우리 애기 아빠가 지금 자리 맞은 편에 남양문구를 차렸어요. 그때는 저도 어리고 해서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구점을 운영한다는 게 참 재밌더라고요. 초등학교 앞 문방구이다 보니 아이들을 매일 보게 되고 그 순수한 얼굴과 목소리 이런 것들이 너무 귀엽고 좋더라고요. 가끔가다 홍주초 졸업생들이 찾아오기도 해요. ‘아직도 하시네요?’ 하면서 문 열고 인사하고 가는데, 너무 반갑고 다들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이 들어요. 문구점은 계속 운영해 오던 거니까 이어가고 있는데, 이후 홍주초 이전에 따라 내포까지 옮길 생각은 없어요. 그냥 군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진 있다가 정리하려고 해요.”
한편 홍주초등학교는 오는 2026년 3월 내포신도시로 이전·개교 예정이며, 현재 홍주초등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효제충신’ 비석과 ‘꿈을 키우자’ 비석은 홍주초등학교의 추억과 흔적을 살리기 위해 함께 옮겨질 것으로 확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