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맞닿아 탄생한 그림과 이야기엔 무엇이 담겨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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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맞닿아 탄생한 그림과 이야기엔 무엇이 담겨있나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5.04.17 08:10
  • 호수 886호 (2025년 04월 17일)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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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각양각색 문화예술인
⑧조혜란 그림책 작가
재봉틀로 그려낸 ‘상추씨(2017년 작)’ 앞에서 조혜란 작가가 미소짓고 있다.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조혜란 작가는 1997년, 그림책 ‘사물놀이’를 시작으로 28년간 다량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조혜란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로 근무하며 학습지 삽화 등 주문에 따라 그에 맞는 그림을 그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1990년대 초 어느 날, 자주 오가던 출판사에서 그림책을 보게 된 조 작가는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그림책 작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기본적으로 저희 세대는 즐길만한 문화가 다양하지 않아서 책을 참 많이 봤어요. 제가 하던 작업, 일러스트는 책이란 신성화된 영역에 그림을 넣는 일이긴 하나 온전히 나의 세계를 넣을 수 없다는 어떤 한계를 느꼈거든요. 그런데 그림책을 맞닥뜨리고 나서 이 장르라면 나의 정서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조혜란 작가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이어가면서 그림책을 준비하고, 큰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그의 첫 작품 ‘사물놀이’가 출간된다. 

크게 그림과 이야기로 구성되는 그림책 작업은 스토리보드(콘티)를 만들어 이미지화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대사나 문장보다는 이미지 설정을 먼저 해 전체적 흐름을 잡아내는 것이다. 이후 설정 자체가 받아들여지면, 주변 피드백을 수용하고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장면이 추가되거나 제외된다. 그러고 난 뒤, 장면마다의 이미지를 전체적 흐름 속에서 또 한 번 설정하고, 이야기가 무난히 흘러가는 부분과 하이라이트 줄 부분을 나눠 그림을 그리게 된다. 큰 것부터 작은 것으로 점차 세밀해지는 순서로 작업은 이뤄진다. 

“그림을 그릴 때는 조잡해지지 않도록 조형미를 중점에 두고 그려요. 그림을 그리기 전, 글을 한 번 써두긴 하지만 그림을 거의 완성하고 나서 약간의 문장이나 대사를 추가하는 식이에요. 미완성의 상태를 점차 완성 단계로 만들어 가는 과정인 거죠.”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더미북(dummy book).

이렇게 완성에 가까워질 때쯤, 조 작가는 더미북(dummy book)을 만들어 그림의 전체적 흐름과 디자인을 확인한다. 여기에서 더미북이란 출간 전 샘플로 볼 수 있는 가제본 그림책을 말한다. 그리고 조 작가는 이때 ‘진짜 글’이 써진다고 말한다.

“처음엔 이미지에 몰입해 작업하고 더미북으로 전체를 살펴본 뒤 ‘진짜 글’을 쓰게 돼요. 하얀 종이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그림을 그릴 땐 우뇌를, 글을 쓸 땐 좌뇌를 사용하는 느낌이라 저는 모드를 전환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진짜 글은 이때, 처음 써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훌륭한 이웃, 편집자, 작가 등 안목이 높은 사람들이 피드백을 해줄 경우, 작가도 미처 몰랐던 부분을 집어줘 완성도 높은 멋진 작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 작가는 “모든 작품은 미완성이고, 매번 석연치 않게 느껴지지만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작가의 이러한 말에 기자는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말하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결국 하나의 주제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즉, 작가는 같은 말을 다르게 반복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조 작가는 “동의한다”고 밝히며 말을 이었다.

“저의 주제는 자연, 생태, 생명 이런 것들이에요. 한 작가에게서 나오는 작품은 한 송이의 포도와도 같아요. 한 송이의 포도에는 조그만 것도 달려있고 완벽한 타원형도 있을 테고 약간 찌그러진 것도 있잖아요. 한 줄기에 각자 다른 포도알이 달려있듯,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모양의 작품을 만들게 되는 거죠.”

30여 점이 넘는 간행본 중 두 번째 작품인 ‘똥벼락’은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이들이 듣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마법의 단어 ‘똥’을 주제로 한 이 그림책은, 기존의 동화책을 그림책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다. 조 작가는 똥벼락은 일단 글 자체가 재밌고 많은 그림책이 그렇듯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흔하지 않게 흘러가 좋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만한 작품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로 ‘민들레’라는 극단에서 어린이 연극을 만들기도 했어요. 당시엔 그림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지금 보면 제멋대로 그린 듯하나 내용과 어울리게끔 잘 그린 것 같아요.”

조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림책은 스무 바닥 미만의 공간에 발단과 전개, 위기와 절정, 결말로 흐르는 짧은 호흡이다. 

“작업 시기엔 딱 이 정도의 사고력만 갖고 진행해요. 늘 시간은 충분했어요. 그렇지만 나의 한계인 거죠. 나의 한계를 느끼면서 털어내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주어지면 못 할 거예요.”

조 작가의 대표작 ‘할머니, 어디 가요?’는 작가가 산과 들, 바다 등 매달 지역 먹거리가 있는 곳에 찾아가 눈에 띄는 것을 주제로 선정해 이야기와 그림을 구성한 것이다. 그는 ‘이걸 어떻게 만들어 볼까’ 고민하며 창의력을 더해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자연을 통해, 자연에 담긴 것들을 접하면서 영감을 받고 그것들이 제 안으로 들어와 저와 만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는 전 4권으로, 귀한 반찬을 찾으러 자연을 누비는 일곱 살 옥이와 옥이의 할머니가 이야기를 펼쳐낸다. 

또한, 우리지역 ‘홍동면’을 배경으로 한 ‘노야네 목장은 맨날 바빠!’는 홍동면의 목장과 실존 인물들의 실명을 그대로 따온 그림책이다.

“저는 우리의 삶에서 마을 공동체가 가장 좋은 형태의 인간 단위라고 생각해요. 더 넓게는 국가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가 있지만, 마을 단위적 삶에서 나오는 도덕성과 삶의 규범, 함께 살아가는 삶 이런 것들이 훨씬 직접적이라고 느끼거든요. 마을 단위에서 시작되는 삶과 거기에서 오는 행복, 서로가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 이런 것들이 좋아요. 그림책 작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있고요.”
 

아트 프린트와 재봉틀을 사용해 만든 작품들이 전시된 2층 갤러리.

작가의 최근작 ‘목화씨’는 한 아이가 목화씨를 심고 키우며 생겨난 걱정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과정(성장)을 담고 있다. 이는 3년 전, 홍동으로 이사하면서 목화 농사 수업을 참여하게 된 작가의 체험이 재료가 돼 탄생한 작품이다. 이렇듯 작가의 작품은 자연과 맞닿아 있으며, 자연은 작가의 내면세계와 만나 오붓하고도 근사한 이야기로써 펼쳐진다. 조 작가가 비유했듯, 작가는 하나의 포도송이만을 만들 수 있으므로, 그의 작품은 ‘자연’이란 줄기로 일맥 한다. 그리고 한 마을에서, 한 아이에게서, 작은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들은 그 이상의 큰 의미를, 소중한 건 작고 가까이에 있다는 지혜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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