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
칼럼·독자위원
“누군가는 비웃을지라도,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다시, 믿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란 것을, 권은에게 증여된 카메라가 이 세상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빛과 멜로디》가 내 안의 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또다른 ‘사람, 사람들’을 만나 더 먼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흘러가 점등되기를 지금 나는, 고요히 꿈꾼다. 망각되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아픔과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일 수 있도록……”(《빛과 멜로디》, 258~259쪽)
2025년 4월 9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미사일이 떨어졌다. 올해 초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15개월간 진행된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지만, 일상이 회복되기도 전에 약속은 파기되고 공습이 재개되었다. 이번 전쟁으로 가자지구 내 60%의 건물이 파괴되고, 주민 5만 846명이 숨졌으며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조해진 작가는 《빛과 멜로디》를 통해 시리아 분쟁, 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홀로코스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위태로워진 인물들의 삶을 조명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전쟁으로 육체적·정신적 상흔을 갖게 되었기에, 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에 누군가는 왜 그토록 맹목적으로 붙들려 있는지, 죽고 죽이는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미친 전쟁에서 승리자와 패배자, 가해국과 피해국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며 전쟁의 무의미함과 폭력성을 되새기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 같은 전쟁 상황을 머나먼 곳의 이야기라 치부할 수 있지만, 나는 12월 3일 이후 우리 사회의 진영싸움이 과열되는 것을 보며 계엄 후 몇 개월 사이에 우리 사회가 내전에 이르렀다고 느낀다. 어떤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든,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렸든, 실제 삶에서 공통된 무언가가 있는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지지하는 진영에 따라 서로를 무조건 적대시하는 감정 상태에 도달한 것 같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따뜻함은 환상 속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 디딤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전과도 같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내란 세력들은 “‘국민’을 위한다”, “‘국민’과 함께하겠다”라고 말하며 군중을 현혹한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옆의 사람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지닌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특정 정당의 지지자와 비(非)지지자로만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구체성을 상실한 채 아군과 적군으로만 나뉘는 경계가 얼마나 환상과도 같은지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달 6일 포천에서는 한미연합훈련 과정에서 좌표 입력 오류로 공군 전투기가 포탄 8개를 민가로 떨어뜨려 29명의 주민이 다치고, 152채의 건물이 부서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나라 국민을 다치게 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한 오폭 사고가 ‘자유의 방패’(FS·Freedom Shield)라는 이름의 훈련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전쟁에서 시민들을 죽이는 것은 비단 적군만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를 위한 방패인가. 그리고 국민으로 호명되는 이들과 그 밖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소설 속 인물들은 묵묵히 남은 삶을 살아가며 결국 ‘답 없는 질문’의 답을 발견한다. 조해진 소설가는 2022년 2월에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증명하려는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했지만, 작품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자기검열에 시달렸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서 시리아 분쟁을 기록하다 한쪽 다리를 잃은 등장인물 ‘권은’이 부상 이후 자신의 작업을 뒤돌아보게 됐듯, 작가 역시 자신의 소설이 누군가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지,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자기만족’이 아닌지 성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고민 속에서도 작가가 글을 이어갈 수 있었던 동기는, 그럼에도 타인에게 보내는 작은 ‘온기’가 사람을 살린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마음도 그렇다. 누군가는 뻔하다고 느낄 메시지를 반복하는 까닭은 결국 변화의 시작이 한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힘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호의’에서 시작된다. 12월 3일 계엄 이후 우리 삶은 때아닌 4월의 추위처럼 아직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인간의 작은 호의를 말하는 책 《빛과 멜로디》를 추천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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