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복(心腹)을 울리는 소리로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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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心腹)을 울리는 소리로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5.04.24 08:32
  • 호수 887호 (2025년 04월 24일)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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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각양각색 문화예술인
⑨문철기 소리꾼
지난 17일에 만난 문철기 소리꾼이 활짝 웃고 있다.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덕산면 둔리 태생인 문철기 소리꾼은 1983년 홍성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89년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31년간 특수교사로 근무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우리의 소리 ‘국악’에 심취하게 됐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 봤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찍이 동네에 풍물패가 오면 졸졸 쫓아다닐 만큼 우리 가락, 우리 소리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 시절 풍물을 배울만한 여건이 안 됐기에 동경심을 품는 것 말곤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마음은 시간에 휩쓸려 사라지기는커녕 세월에 비례해 성장하게 된다.

“첫 발령 나고 서울에서 교사 생활할 때예요. 같은 마음을 가진 교사들끼리 모여서 ‘청사(푸른 교사)’라는 교사 풍물패를 만들었어요.”

1994년부터 15년가량 교사 풍물패로 활동한 문철기 교사는 상모를 쓰고 운동장을 돌면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교사 풍물패 ‘청사’를 통해 어린 시절의 동경을 조금씩 풀어내던 문 씨는 교사 풍물패를 지도하던 보조 사부의 소개로 1999년 ‘성우향(국악인)’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우게 된다.

“정말 미친 듯이 소리를 했어요.”

그는 교사로 근무하며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이용해 성우향 선생에게 춘향가와 심청가를 전수받는다.

“당시는 카세트테이프를 듣던 시대예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귀에 이어폰 꽂고 연습하던 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니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하고 그랬겠죠. 더러 사람들이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하하하하.”

이어 문철기 소리꾼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향수병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때를 떠올렸다.

“1991년 무렵부터 아내한테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서울역 지하철, 1·4호선 환승 지점 부근이었을 거예요. 훅! 쇳가루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데, 그동안 참고 있던 게 폭발하듯 결심하게 됐어요. ‘아, 이젠 정말 고향에 내려가야겠다’하고요. 그래서 서울농학교를 마지막으로 서울을 떠나게 됐죠.”

특수교사였던 그는 근무 희망지 1순위를 홍성으로 2순위를 서산으로 3순위는 예산으로 적었다고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보령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3년간 보령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이후 2010년 홍성(금당초등학교)으로 오게 된다. 

“보령에도 교사 풍물패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또 열심히 활동했죠. 그리고 3년 뒤 홍성으로 와서는 문화예술활동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단체를 하나 만들었어요.”
 

홍성군청 안회당에서 열렸던 ‘제1회 한성준 광대전’에서, 문철기 소리꾼의 모습. 

2010년 3월 20일, 문철기 소리꾼을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홍주문화예술인공동체 ‘너나들이’가 발족됐다. 문 씨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역량 부족과 지자체에서의 모임 운영이 쉽지 않음을 배웠다고 한다.

본업이 있는 와중에도 이토록 열의를 갖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국악’에 빠져들게 된 근본은 무엇일까.

“피. 피예요. 저희 어머니가 민요를 잘하셨어요. 타고난 소리였어요. 그러니 어릴 적부터 많이 들으며 자랐고, 워낙에 소리를 좋아하니까 동네에 풍물패가 왔을 때도 유심히 듣고 보고 그랬어요.”

문철기 소리꾼은 웬만한 타악기는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며, 기악기 중에서는 아쟁을, 그리고
판소리는 전수받은 춘향가와 심청가에 이어 현재는 여름방학 때마다 전라남도 목포에 내려가 ‘임봉금’ 명창에게 적벽가를 배우고 있다.

문 소리꾼은 홍성판소리연구소 ‘판’의 대표로서 지역 내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국악 공연에 기획·참여하고 있으며, 국악·예술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내포사랑예술단 ‘풍경소리’의 단원 중 한 사람으로 장구재비와 심봉사 역을 맡고 있으며, 지난달엔 갈산자치위원회에서 주관한 ‘한성준 판소리의 세계’ 특강을 맡기도 했다.
 

‘전통시장 부보상 재현행사’에서 ‘심봉사’ 역을 맡은 문철기 소리꾼이 공연 중에 있다.

문철기 소리꾼은 홍성문화도시추진위원회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홍성에서 춤판을 벌이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이에 2022년 ‘제1회 한성준 광대전’이 개최됐으며, 올해도 한성준 선생을 주제로 공연을 기획 중이다.

“저는 시기로 따지자면 2세대에 속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 뒤를 이을 3세대가 없어요. 대략 20년 뒤엔 홍성에 국악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한성준 선생 선양사업도 이러한 이유에 기반한 거라고 보시면 돼요.”

소리꾼 문 씨는 이 밖에도 전통 무용가 이애주 선생, 여류시인 김호연재 등 우리지역 예술인을 알리는 데 매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오래된 것이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오래된 미래’를 주제로 문화예술의 발전 방향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의식이 생겨나면 공간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연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유감없이 한 궤로 뻗쳐나가는 소리는 언어와 만나 일필휘지로 장면을 그려낸다. 허방에 숨어있다 화들짝 놀래키듯, 그러다가 덤불 사이로 숨어들 듯, 꽃이 만개하듯, 처연하게 낙화하듯 우리의 인생처럼 자꾸만 굴곡을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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