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 바친 세월 31년, 거룩한 농사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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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바친 세월 31년, 거룩한 농사꾼의 이야기”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5.05.01 08:27
  • 호수 888호 (2025년 05월 01일)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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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홍성군연합회장
고영섭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홍성군연합회장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이정은 기자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한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고영섭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홍성군연합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5일 결성면 성곡리를 찾았다. 수레를 끌고 나타난 고 회장은 농번기를 맞아 못자리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못자리를 준비하던 비닐하우스 앞, 그는 비료 푸대 2개를 쌓아 앉을 자리를 마련해 줬고,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결성에서 나고 자란 고영섭 회장(61)은 결성초·갈산중 졸업 후, 일찍이 농사에 뜻을 품고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며, 공주대학교 최고 경영자 과정 3기를 수료했다. 이후 1994년 무렵, 그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게 된다. 

“지가 졸업한 공주생명과학고는 농고니께 농사에 관한 전반적인 걸 배우쥬. 3년간 기숙사 생활하면서, 국영수 이런 거는 기본적으로 배우고 동시에 농사, 원예, 축산, 농기계 등 이론·실습 교육을 받는 거쥬.”

고영섭 회장은 어린 시절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을뿐더러 농사가 최고라고 여겼기에 농고에 진학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때 당시에는 아는 게 뭐 있나. 그 시절엔 농사가 최고였슈.

그리고 누구 밑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보다야 한갓지게 내가 리더가 돼서

농사짓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혔으니께유.”

농사에 막 뛰어들었던 청년 시절, 벼농사와 소 축사를 겸했던 고 회장은 현재 벼농사와 고추·감자·배추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주로 직거래로 납품하고 있다.

“지는 저탄소 유기농 공법으로 벼농사를 지으니께유. 이달 초에 벌써 바이오차 살포했슈. 남이랑 똑같이 혀선 안 돼유. 지가 농사 진 쌀 먹어 본 사람들은 그것만 계속 찾으니께유. 납품하는 식당서도 잡숴 본 손님들이 쌀 어디꺼 쓰냐고 물어봐서 그런 식으로다가 주문이 들어오기도 해유.”

고영섭 회장이 농사지은 쌀은 ‘전국으뜸농산물경진대회’ 쌀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제31회 전국으뜸농산물한마당’에서는 마늘을 출품해 대상에 선정되고, ‘2021년 혁신한국인&POWER KOREA 대상’ 농업부문 수상, ‘2021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 농업경영인 대상으로 발표되는 등 그동안 고 회장의 손에서 길러진 농산물들은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여러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현재 고 회장은 벼농사 위주로 고향 집터 인근 논 70여 마지기, 대략 2만 평 규모에 농사를 짓고 있다.

“한 3월만 되면 움직이기 시작해야쥬. 새벽 4시 반쯤 일어나서 저녁 대여섯 시까정 계속 일하는 규. 농번기라 일 밀리고 그럴 적엔 여기서 자기도 하고 그류.”
 

결성면 성곡리에 위치한 그의 일터에서 만난 고 회장은 농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으로 부지런함을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인터뷰를 진행하던 곳에선 고영섭 회장이 일찌감치 심어놓은 고추와 이를 보호하기 위해 낮게 덮인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기자의 집에선 늦봄이나 초여름쯤 고추 모종을 심던 기억이 스쳐 고 회장에게 “벌써 고추를 심으신 거냐”고 묻자, 고 회장은 “넘들하고 같으면 되간디유. 부지런히 빨리 빨리혀야지”라고 답했다.

고영섭 회장은 국민학교 시절 마을에 농번기가 찾아오면, 모심는 일을 나서서 도울 정도로 농사 자체를 좋아했다. 또한 지금껏 31년여간 농사를 지어왔기에 어떤 작물이든 농사라면 자신 있다고 말한다.

“지는 농사가 제일 쉬워유. 농사가 어려울 게 뭐 있슈? 내가 한 만큼 나오는 게 농사유. 그리고 농사는 자유대로 할 수 있잖유. 넘한테 구속받는 것도 없고 얼마나 좋아유. 애초에 꿈이 농사꾼이었으니께 몸이 어렵고 힘들고 이런 건 뭐 일체 신경 안 쓰니께유.”

이 말을 통해 그의 성정을 짐작할 수 있다. 평소 주변인들에게 ‘독종’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고 회장은 앞으로 70대까지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지는 농업으로 성공했슈. 농고 나와서 4-H 회장도 했고 뭐 가문의 영광이지. 70대까진 농사 죽 지을 생각이유. 여긴(결성면) 지가 막내유. 칠십이 되도 지가 막내유. 허허허허허.”

‘농사가 제일 쉽다’고 여기며 한결같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타고난 우직함과 남다른 부지런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는 듯하다. 
 

“그냥 즐겁게 살아야쥬.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 속 끓이면 뭐 한댜.

이 생각 저 생각할 거 읍시 재밌게, 즐겁게 사는 게 최고지~”

기자의 질문은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였다. 이는 미리 준비된 질문이 아닌, 고 회장과의 인터뷰 중 불쑥 궁금해져 묻게 된 질문이었다. 그는 마치 거꾸로 흐르는 폭포 같았다. 기자는 고 회장에게서 차마 필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인상을 받았다. 시원하고도 힘찬 것이 폭포가 연상되기는 하나, 아래로 낙하하는 것이 아닌 비상하는 새처럼 하늘을 향해, 위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는 듯한, 비현실적이고도 불가능한 그러나 이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인상이었다. 

불충분한 설명을 이어가자면, 복잡다단한 일을 맞닥뜨려도 벙싯 웃으며 일별하고 농사일에만 전념할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해 자신의 일을, 가장 쉽다는 농사를 해나갈 것이다. 속 끓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며.
 

모내기를 준비 중인 고영섭 회장이 모판에 기대어 인터뷰 중, 기자에게 벼농사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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