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의 보고 술지게미, ‘홍동’에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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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의 보고 술지게미, ‘홍동’에서 다시 태어나다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5.05.29 07:22
  • 호수 892호 (2025년 05월 29일)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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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순환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
신은미 이사장이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풀무학교생활협동조합(이하 풀무학교생협)’에서 술지게미를 활용한 빵과 쿠키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19일 ‘막걸리의 친구들(협동조합)’ 신은미 이사장과 김형수 조합원 그리고 풀무학교생협의 안상선따와 제빵사를 만나 술지게미 빵과 쿠키가 탄생하게 된 전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 막걸리로 유대하는 사람들
최소 3년에서 최대 10여 년 전 홍동면과 장곡면에 귀촌해 농사를 짓고, 농사지은 곡식으로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를 만들던 이들은 지난 2022년 ‘막연한 모임(막걸리를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각자가 빚은 가양주를 마시면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가양주 문화 확산을 통해 쌀 소비를 촉진하고 많은 사람들이 농촌과 막걸리의 연결성을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고, 신은미 이사장을 포함해 총 6명의 조합원들이 모여 ‘막걸리의 친구들’이 결성됐다.

이들이 만드는 막걸리에는 홍동유기농찹쌀과 누룩, 물 이렇게 3가지가 사용되며, 계절에 따라 쑥·오디·복숭아·오곡 밤·허브 등의 재료를 첨가해 제철 막걸리를 제조하기도 한다. 

 

■ 술지게미 활용법을 궁리하다
열흘간 발효를 거친 막걸리는 거르는 과정에서 반드시 술지게미가 남게 된다. 술지게미에는 비타민 B와 펩타이드, 식이섬유 등이 풍부해 피부 미용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면역력을 증대시키고 나쁜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등 여러 효능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술지게미는 흔히 퇴비 정도로 쓰이거나 처치 곤란으로 버려진다. 이에 ‘막걸리의 친구들’은 지게미를 다양하게 활용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의 지원으로 술지게미 시범 사업을 하면서 조합원들은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됐다.

“남는 지게미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그때 얻은 가장 큰 성과가 빵과 쿠키였어요. 빵을 만들 때도 발효 과정을 거치니까 술지게미를 넣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서 시도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아무래도 저희가 제빵이나 제과에 능숙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모양이 조금 조악했죠. 하하하하하.”

이후 막걸리의 친구들은 양조 워크숍(막걸리 빚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시도 끝에 성과를 보인 술지게미 활용법(쿠키 만들기) 또한 함께 수업하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기술이 더해지다
막걸리의 친구들은 술지게미 빵과 쿠키를 좀 더 발전시키고자 했다. 

“술지게미를 넣어 완성된 빵과 쿠키는 모양 면에선 다소 아쉬웠으나, 맛에 있어서는 뒤떨어지지 않았어요.”
 

술지게미 빵의 단면을 살펴봤다.

이에 ‘풀무학교생협’과 협업해 지난 4월 중순 무렵, 술지게미 빵과 쿠키가 각 6500원과 3500원의 가격을 달고 판매되기 시작했다. 막걸리의 친구들의 아이디어에 풀무학교생협 제빵사의 기술이 합쳐져 술지게미는 빵과 쿠키로 모양을 갖춰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안상선따와 풀무학교생협 제빵사는 “술지게미 쿠키의 경우 레시피가 예상보다 빨리 완성됐고, 빵은 대략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막걸리의 친구들과 안상선따와 제빵사는 서너 차례 테이스팅을 거치면서 레시피를 조정해 현재의 술지게미 빵과 쿠키를 완성시켰다. 술지게미 빵에는 우리 백밀·술지게미·앉은키 통밀·이스트·천일염이 들어가며, 술지게미 쿠키에는 우리 백밀·술지게미·해바라기유·유기농 설탕·천일염·후추가 들어간다.
 

풀무학교생활협동조합에 진열된 술지게미 쿠키.

■ 정체성을 잃은 듯 살아있다
술지게미가 들어간 빵과 쿠키는 무엇이 다를까? 안상선따와 제빵사는 빵과 쿠키를 맛볼 수 있도록 준비해 줬다. 일단 빵부터 말해보겠다. 술지게미 빵은 식사 빵으로 분류되며, 겉은 단단·바삭한 반면 안은 굉장히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다.

지게미가 들어갔다기엔 막걸리가 전혀 연상되지 않았으며, 쫄깃한 식감에 은은한 풍미가 감돌았다. 또 함께 나온 랜치 소스가 상당히 맛있었는데, 제빵사는 홍동에서 생산된 평촌요구르트에 파슬리 찹(chop, 다지다)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쿠키는 빵에 비해 산미가 제법 도는 편에, 소금 알갱이가 아삭하게 씹히면서 짭짤함을 퍼트리는, 세련된 맛이었다.

안상선따와 제빵사는 “아무래도 술지게미가 수분을 머금고 있으므로 빵과 쿠키를 계량할 때 다른 것들에 비해 액체류가 덜 들어가는 편이고, 지게미가 사람의 압으로 짜낸 것이라 수분 함량이 저마다 달라 만들기에 다소 까다로운 편이지만, 지역 순환이 목적이기에 지속적으로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매주 1회(수요일) 생산되는 술지게미 빵과 쿠키를 찾는 소비자들이 계속해 늘어나고 있으며, 더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받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홍동면 문당리에 위치한 ‘막걸리의 친구들’ 작업실에선 매달 양조 워크숍이 열린다.

■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
술지게미 빵과 쿠키가 판매될 때마다 빵은 200원, 쿠키는 100원씩 적립되며, 이 금액은 홍동에서 열리는 ‘막걸리 축제’의 씨앗 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막걸리 축제는 지난해 처음 개최됐으며, 방문객들의 호응에 따라 오는 10월에도 진행될 예정이다.

‘막걸리의 친구들’은 앞서 말한 바 있는 양조 워크숍을 매달 진행하고 있으며, 신은미 이사장은 “체험에 참여한 분들께서 제대로 막걸리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도록 6~8명 정도만 신청받아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막걸리의 친구들은 지역 양조장을 조사하고 가양주 문화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막걸리와 농사를 매개로 한 농촌살이(가칭 ‘막걸리스테이’) 프로그램 또한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 내용은 막걸리의 친구들 인스타그램 계정(@makchin.hongdong)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지난 3월엔 광천 잇슈창고에 입주하게 됐어요. 그 공간을 잘 활용해서 술지게미 쿠키를 만드는 클래스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막걸리 빚기 키트도 개발해 보려고 해요. 레시피북까지 포함해 우리만의 패키지를 만드는 거죠. 그렇게 되면 결국, 지역 농산물의 소비도 증대될 것이고 이로운 연결·순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같은 마음으로 모인 여섯은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농촌 문화와 연결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같은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막걸리를 좋아하고 빚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장 두 장 세 장, 계속해 쌓일 것이다. 아, 한 잔 두 잔 석 잔으로 셈해야 할까? 
 

쑥 지게미(왼쪽)와 일반 지게미.
막걸리 빚기 레시피북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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