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떼는 갔어도 신명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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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떼는 갔어도 신명은 남아
  • 이예이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6.26 08:00
  • 호수 896호 (2025년 06월 26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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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예이</strong><br>홍성녹색당<br>칼럼·독자위원
이예이
홍성녹색당
칼럼·독자위원

답중(畓中)굿. 충청권에서 흔히 ‘모심기굿’으로 불리던 이 굿은 모를 심을 때 풍작을 기원하며 치는 농악이다. 모를 심으며 굿을 치는 문화는 사라졌다. 이앙법, 기계의 발달, 화학적 비료, 제초제, 살충제 개발, 심지어 키우기 쉽게 유전자를 조작할 수도 있는 오늘날, 하늘에 대고 풍년을 빌 사람은 거의 없다. 농업학교 풀무학교 전공부에서는 그럼에도 4년 만에 답중굿이 울렸다. 마을 사람 몇과 모여 풍물을 쳤다. 이런 제례는 과거를 재현해 보이는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조기에 관한 명상》은 민속학자 주강현이 쓴 조기 멸망사다. 조기는 서해안 문화와 뗄 수 없는 생물이다. 어살, 주목 등의 어법은 자체로 서해의 독특한 풍경이었고, 최대 생계 수단이었던 조기의 행로를 쫓아 이동하는 파시(시장) 역시 그랬다. 중심엔 신화가 있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하늘에 의탁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은 만선을 기원하며 띠배를 띄웠고, 임경업 장군과 각시인에 풍년을 구했다. 

1960년대 말, 세계 어획량은 2270만 톤이었다. 기술의 발달은 놀라웠다. 산업적 어업이 본격화된 1970년대, 5830만 톤으로 껑충 오른 어획량은 1991년, 8100만 톤을 찍었다. 그러나 ‘과학적 어법’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이후 어획량은 끊임없는 하락세였다. 
 

《조기에 관한 명상》 주강현/ 한겨레신문사/ 1998년 7월/ 8,000원

식탁에 흔히 올랐던 참조기의 멸종 원인으로는 대규모 어업으로 인한 남획 그리고 기후 위기를 포함한 서식 환경의 변화가 꼽힌다. 조기 멸망사는 기술과 산업이 소기의 목적에서 벗어나 오히려 터전 자체를 말살시킨다는 모순의 역사다. 

저자는 신안 흑산도, 영광 법성포, 태안 천수만, 보령 녹도, 인천 연평도 그리고 북의 가도에 이르기까지 모해 회귀본능에 따른 조기의 경로를 추적한다. 책이 출판된 1998년, 조기는 이미 희귀해진 때였다. 그래도 그는 이 여정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밤의 별이 얕게 보일 때는 비가 보인다”고, “아침에 해가 하얗게 올라오면 바람이 분다”고 말하는 어민을, 여전히 “조기를 둘러싼 꿈과 신화”를 증언해 줄 이들을 만났다. 태안에서 독살을 돌보는 이도 만났다. 

독살은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로 방식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전통 어법이 사라졌대도 독살만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태안은 조석차가 커 돌을 쌓아 생물을 가두는 게 가능한 환경이긴 하지만, 딱히 편리하다거나 효율적 방식이라 독살이 유지된 것은 아니라 본다. 하루 두 번씩 보수해야 원형이 보존되는 독살의 명맥을 오래도록 끌고 온 것은 차라리 정성이 아니었을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데 저자는 기뻐한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어업으로써의 독살이 마지막으로 보고된 것은 충청투데이 2004년 기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살업을 고수해왔던 태안의 김의배 씨가 작고하며 아들 김종권 씨가 그 맥을 이어받았다는 기록이다. 

이 멸망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조기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1987년 봄을 회상한다. 그해 천수만 어부들의 간척지 보상 투쟁에 연대하는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행사 이름은 ‘조기떼는 갔어도 신명은 남아’였다. 태안이나 그 주변 지역에 갈 때 ‘AB도로’라 불리는 간척제방도로를 숱하게 지났다. 바다를 메꿔 만든 도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기떼 그리고 사라진 어민들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본 적은 없다. 

천수만은 수만의 떼가 무리 짓는 가창오리의 월동 서식지이기도 했다. 그들도 조기처럼 몸에 깊이 각인된 회귀본능을 따른다. 우리 마을에서도 겨울이면 가창오리떼가 하늘을 덮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생존터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들은 여전히 천수만을 찾는다. 

책의 출판 당시 사회는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그때도 지금도 ‘다른 길’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하기만 하다. 신자유주의의 포악함에 연루된 누군가의 사망 소식이 연일 들려오지만, 내 이익에 얽히지 않은 일에 관심 기울이기 어려운 풍조의 사회다. 이런 사회, 조기가 멸종한대도 당장 나와 상관없다면 무시해도 괜찮다는 문화는 건강하지 않다. 샤머니즘에서 벗어난 첨단의 문명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고, 또 정말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이앙기 앞에서 울리는 제례는 가창오리떼의 방황처럼 쓸쓸한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자본’이라는 신만이 살아남은 극단의 시대, 과거의 신화를 재현하는 일이 그리 헛되다고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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