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말러의 삶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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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말러의 삶과 음악
  • 홍주일보
  • 승인 2025.07.03 07:05
  • 호수 898호 (2025년 07월 03일)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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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윤정용<br></strong>문학평론가<br>칼럼·독자위원<strong></strong><br>
윤정용
문학평론가
칼럼·독자위원

문학과 영화는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파악될 때 그 해석의 폭이 확장되고 해석 또한 유의미해진다. 문학과 영화의 ‘상호텍스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12)과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가 꼽힌다.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based) 영화의 경우 원작의 내용, 주제, 모티프, 등장인물 등을 대체로 따른다. 비스콘티의 영화는 주인공의 직업이 소설가에서 작곡가로 바뀔 뿐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병에 걸려 쇠약해진 작곡가 구스타프 아셴바흐는 요양을 위해 베니스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인 아름다운 소년 타치오를 발견하고 그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아셴바흐는 타치오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실제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를 소환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서사 전개와 주제 전달을 위한 주도적인 모티프로 기능하며 영화 전체를 조율한다. 영화 내내 사랑과 죽음의 모티프로서 주인공의 운명을 반복적으로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는 말러의 음악, 그중에서도 아다지에토가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다지에토는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용되었다. 앞서 언급한 <베니스에서의 죽음> 뿐만 아니라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2022)과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타르>(토드 필드, 2022)에도 사용되었다. 이 영화들에서도 말러의 5번 교향곡은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두 영화에서 템포는 정반대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이보다 더 느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느리고, <타르>에서는 젊은 사랑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빠르고 격정적이다.

말러가 아내 알마에게 보낸 러브 레터로 알려진 아다지에토는 곡진한 사랑의 세레나데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 음악은 주로 사랑보다는 주로 이별, 고독, 추락, 소멸 등의 주제를 상징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과 <타르>는 말러 교향곡 5번을 매개로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애정과 상실을 노래한다. 우리에게 말러가, 그의 교향곡 5번이 필요한 이유는 저마다의 인생이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처럼 아다지에토는 작곡가 말러보다 훨씬 더 유명하다. 바꿔 말하면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곡이지만 이 곡을 작곡한 작곡가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음악을 통해 작곡가 말러의 삶을 유추하기도 한다. 그의 삶과 음악이 무척 궁금해 영화를 통해 그의 삶과 음악을 들여다본다.

<구스타프 말러의 황혼>(펠릭스 애들론·퍼시 애들론, 2010)은 말러의 부인 알마 말러와 발터 그로피우스의 사랑, 그리고 말러에 대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그린 일종의 역사드라마로 실제에 바탕을 둔 허구의 이야기다. 영화의 원제는 ‘침상 위의 말러’다. 영화 내용에 비추어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프로이트로부터 정신분석을 받기 위해 침상 위에 누운 말러’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은 1910년 오스트리아 빈이다. 말러가 세상을 떠나기 약 9개월 전(前)으로 교향곡 10번을 작곡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는 부인 알마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심리치료를 위해 네덜란드의 레이던에서 휴가 중인 프로이트를 방문했다.

말러의 삶과 음악에서 알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당대 유명 화가였던 에밀 야콥 쉰들러와 어머니 안나 베르겐의 딸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제자였던 빈 분리파의 창시자 카를 몰과 재혼한다. 알마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들 속에서 자랐다. 그녀의 첫 연인은 분리파의 초대 의장이었던 구스타프 클리트였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는 알마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바람의 신부>의 유명한 오스카 코코슈카 또한 알마와 불륜 관계였다. 이 작품은 알마와의 이별을 예견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이 알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고 이율배반적이다. 결혼 후 말러가 사망할 때까지 십 년 동안 이어진 결혼 생활 동안 알마는 개인으로서나 작곡가로서나 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는 그녀가 말러 곁에서 음악적 영감을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이상적인 예술 조력자, 즉 ‘말러의 뮤즈’였다고 칭송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뮤즈는커녕 혼인 관계 중 불륜을 저지르며 말러에게 정서적 치명상을 입힌 악처였다고 비난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말러가 죽은 뒤 회고록을 집필하며 그의 삶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해 작곡가 말러의 진정한 이면을 헤아리는 것을 방해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천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던 알마는 말러와의 결혼생활에 점차 염증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던 어린 딸을 디프테리아로 잃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휴양 차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로 떠난 여행에서 네 살 연하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뜨거운 시간을 보낸다. 알마가 말러에게 돌아가자 질투심으로 가득 찬 그로피우스는 알마에 대한 연심이 가득 담긴 편지를 말러에게 보낸다. 말러는 이에 극심한 충격을 받았고 프로이트를 찾아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구스타프 말러의 황혼>은 말러가 프로이트를 찾아가 정신 치료를 받는 장면은 바로 이 시기를 극화한 것이다. 영화에서 말러와 프로이트의 만남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그 만남은 말러에게 정신적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의 주제는 ‘저주와 분노’에서 ‘이해와 사랑’으로 승화된다.

음악평론가 노승림의 말에 따르면, 베토벤이나 바그너와 마찬가지로 말러 또한 스스로 모순된 존재였으며, 여러 상반된 의미의 다양성을 동시에 다루는 서사적 예술가였다. 그의 음악은 거울과 같아서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의 주관적 모순을 투영한다. 그의 교향곡들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처럼 빈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 ‘센티멘탈’이나 ‘노스탤지어’ 등과 같은 과거지향적인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늘 바로 지금, 동시대의 소리로 치열하게 승화되어 울려 퍼져 왔다. 듣는 이는 물론 연주하는 이 하나하나의 인생에 저마다 진한 의미를 남기고, 추억을 빚어내며, 삶의 모순을 맞이할 용기를 심어 준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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