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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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야생화
  • 서정식<칼럼위원·전 대평초 교장>
  • 승인 2013.09.0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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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밭둑에 무성하게 나있는 잡초를 뽑았다. 삼 개월 만인 것 같다. 14년 전에 산을 구입하고 돌무더기에 찔레나무가 무성한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일구고 이웃 밭과의 경계를 측량하여 석축을 쌓고 조경을 한 둑이다. 삼개월 동안 많이도 자랐다. 쑥대밭이 된 곳도 있다. 봄에 한차례 풀을 뽑았는데 쑥은 1m가까이 자랐다. 뽑으려고 하니 바위틈에 뿌리를 박아 잘 뽑히지도 않는다. 할 수없이 낫으로 잘랐다. 환삼덩굴은 이미 1m가량 10년 넘게 자란 소나무를 덮었다. 잎이 삼의 잎을 닮고 덩굴이 잘 뻗는다. 줄기와 잎 뒷면에 아주 작은 가시가 있어 피부에 스치면 상처가 나는 풀인데 고혈압에 효능이 좋다고 한다. 잡아당기니 무더기로 엉켜 끌려 나온다. 덩굴을 여기저기 뒤져 환삼덩굴 뿌리를 찾으니 벌써 새끼손가락 굵기다. 힘껏 당기니 긴 뿌리가 쑥 시원스레 뽑힌다. 환삼덩굴 옆에 며느리밑씻개가 자라고 있다. 환삼덩굴처럼 잎과 줄기에 가시가 있는데 참 짓궂은 이름을 붙였다. 소나무 사이에 심은 영산홍에는 며느리배꼽이 숨은 듯 자라고 있다.

그 때 라디오에서 '매일 그대와 김동규입니다'의 하하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하하 웃는 것이 아니고 웃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일하는 즐거움에는 세 가지가 맞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인가? 둘째 나에게 적당한 분량인가? 셋째 보람이 있는 일인가?" 일하는 게 취미라는 이가 있다. 음악을 틀어 놓고 누구와 얘기 나누며 일할 때는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한다. 제일병원 가정의학과 오한진 박사는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 금년 8월은 무척 더웠다. 한낮에는 밖에서 일을 하기 힘들었다. 나는 더운 여름철에는 오전 오후에 두 시간씩 일을 했다. 오전에는 9시부터 11시까지, 오후에는 4시에서 6시까지 더위에 짜증을 부리지 않고 땀이 흘러 옷이 흥건히 젖는 것을 즐기며 마음을 평온하게 비우고 오로지 라디오를 벗 삼아 농사를 짓고 정원을 관리했다.

환삼덩굴을 제거하니 소나무 옆에 망초, 방동사니, 바랭이, 강아지풀, 개비름, 쇠비름, 달개비 등이 공생하고 있다. 이놈들은 뿌리가 쉽게 뽑혀 힘이 들지 않는다. 분위기 있는 곳에 한두 포기 자라 꽃이 피면 야생화라고 불리는 놈들이다. 도깨비바늘도 있다. 바늘처럼 가늘고 길쭉한 열매 끝에 가시가 있어 사람의 옷이나 짐승의 털에 도깨비같이 잘 달라붙어 붙여진 이름이다.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잡초와의 싸움이라고 하고 싶다.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다. 김을 매고 돌아서면 한 뼘 정도 자란 느낌이 든다. 홍북에서 농장을 하는 친구부부는 잡초한테 항복을 했단다. 넓은 잔디밭에 나는 풀을 몇 년간 아침저녁 수시로 제거 작업했는데 며칠 지나면 또 잡초가 무성해 이제는 지쳐서 뽑지를 않고 잔디와 함께 키운다고 한다. 잡초가 자라면 잔디 깎는 예초기로 짧게 이발해 준다.

지난 7월20일에 천안박물관 정원에 있는 주막에서 대학 반창회를 가졌다. 옛날 주막집처럼 짓고 정자도 꾸며 도시 속에서 시골의 향취를 느끼기에 흡족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잡초가 우거진 것이었다. 쉴 수 있는 의자와 넓은 바위를 놓아두고, 잔디와 여러 가지 나무를 심었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앉아서 쉬기가 불편했다. 잡초를 뽑고 잔디도 깎아주어야 하는데 천안시와 주막을 임대한 사람이 정원 관리에 대해 서로 미루기를 하는지 보기가 흉했다. 방동사니, 바랭이, 달개비를 뽑으니 긴병꽃풀이 잔디처럼 넓게 자라고 있다. 덩굴식물로 번식력이 대단하다. 이놈은 8년 전에 지금은 폐교된 광신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학교담장 언덕에 작은 꽃이 예쁘게 피어 분양한 야생화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집 화단, 매실나무 아래, 밭둑, 정원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천덕꾸러기 잡초가 되어 버렸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 야생화는 인위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산이나 들에 저절로 피는 꽃이다. 잡초와 야생화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잡초에 피는 꽃이 야생화라고 하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나는 잡초처럼 살기 보다는 한포기 야생화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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