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먹고 냄새로 먹는 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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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먹고 냄새로 먹는 전어
  • 최봉순<혜전대교수 ·칼럼위원>
  • 승인 2014.10.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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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뭇잎은 총기를 잃어가며 노란 잎을 준비한다. 하루의 피로를 즐기며 마당에 잠시나마 앉아 시간의 흐름을 느끼다 보면 극성스럽던 모기의 공격이 없음을 감사하게 된다. 더불어 짧을 것만 같은 가을이 지나갈까봐 노파심이 고개를 든다.

춘하추동 사계절 중 가장 풍성한 식재료와 산해진미를 맛 볼 수 있는 가을은 미식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작년 가을에 남당리에서 처음 먹어 봤던 생새우의 식감과 통째로 먹었던 전어의 맛이 새삼 식욕을 느끼게 한다. 이 맛의 독특함은 어찌 나만의 작은 사치일까? 가을 음식 중 가장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전어라고 할 수 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도 있듯이 전어의 맛과 영양은 생선 중에도 으뜸이다. 전어는 경골어류 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돈 전(餞)자와 고기 어(魚)자로 전어(錢魚)라고 부른다. 모양이 동전처럼 생기지 않았음에도 돈 전(餞)를 붙인 것은 전어의 맛이 좋아 값은 생각지도 않고 사람들이 사 들인데서 유래되었다. 사실 전어는 사계절 내내 잡히는 생선인데 유독 가을 전어라 알려진 것은 봄에 알을 낳아 여름 내내 바다 속의 좋은 먹이를 먹고 새끼가 자라고 가을이 되면 성장기를 마친 맛있는 전어로 20cm 정도의 크기로 성장한다.

가을 전어는 다른 계절 보다 지방이 세 배 정도 늘어나고 산란 직전에는 살과 뼈가 연해져서 뼈째 먹어도 될 만큼 부드러워진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1764년)’에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서 서울에 파는데 귀천의 구분 없이 모두 좋아했다. 맛이 뛰어나 이를 사려는 사람들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도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라고 하였고,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 ‘가을 전어는 썩어도 전어’. ‘가을 전어 대가리에는 참깨가 서말’ 등 전어의 맛에 대한 기록과 속담은 전어의 고소함과 담백함을 역설하고 있다.

전어는 고단백 식품으로 라이신, 트레오닌, 트립토판 등과 같은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등푸른 생선에 함유되어 있는 DHA, EPA등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 있는데 다른 계절보다 가을 전어에 3배 이상 들어 있다. 전어는 뼈째 먹는 생선으로 칼슘 섭취를 할 수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피로회복에 좋으며 껍질에는 비타민 B2, B3, 나이아신(niacin)등이 들어 있어 버릴 것이 없다. 전어를 구울 때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통째로 숯불에 구워 내장에 함유되어 있는 쓸개즙이 살 쪽으로 이동하며 쓸개즙에 들어 있는 담즙산은 고도의 불포화지방산을 유화시켜 지방분해 효소를 높여 준다.

한방에서는 소변 기능을 도와주고 아침마다 몸이 붓고 팔다리가 무거운 증상에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또한 위를 보하고 숙취를 해 줄뿐 아니라 손발 저림, 고혈압, 심장질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어는 맛과 영양이 풍부한 생선이지만 비린내가 많아 조리할 때 쌀뜨물이나 소금물에 잠시 담갔다가 조리하거나, 술이나 식초와 함께 조리하면 살이 단단해지고 비린내가 없어진다.

전어의 대표적인 요리로는 갓 잡아 올린 전어를 비늘 벗겨 잘게 썰어 상추, 깻잎, 쑥갓, 양파, 풋고추를 넣고 고춧가루에 새콤달콤하게 무친 전어회 무침, 소금 뿌려 통째로 구운 전어구이, 무와 된장을 넣어 매콤하게 끓인 전어 매운탕이 있다. 그 외에도 전어 새끼로 담근 엽삭젓, 내장만 모아 담근 전어 속젓, 전어 내장 중에도 위만 모아 담근 전어 밤젓이 있다.

전어를 고를 때에는 등쪽은 암청색, 배 쪽은 은백색을 띠며 비늘에는 검은색 줄이 가운데 1개씩 있어 마치 세로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다. 아침 저녘으로 부쩍 쌀쌀해진 기온이 한 낮의 햇볕에 대한 고마움을 키우며, 내 마음은 갑자기 부산해 진다. 식도락도 즐겨야 하고 지난해 고추장아찌를 받아 먹어 본 사람들의 아우성이 새삼 생각나며 고추밭으로 발길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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