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을 닮은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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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을 닮은 국화
  • 최봉순<혜전대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4.10.2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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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있는 큰 나무는 가지 사이로 어느새 듬성듬성 파란 하늘을 보여준다. 첫 단풍 시기가 입에 오르내리고 어느새 소풍 갈 준비를 마음속에 하게 된다. 봄부터 여름 내내 화사한 모습을 보여주던 꽃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며 아직 피지 않은 꽃을 준비하는 국화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올 봄에 작은 국화를 심으며 올 해는 국화꽃을 못 보겠다던 꽃집 아저씨의 말에도 열심히 물을 주었던 보답인지 작은 꽃망울이 수십 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고교시절 교과서에 실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떠올리며 국화꽃은 참으로 가을밤과 어울리는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부터 여름 사이에 많은 꽃이 피었건만 서리가 내릴 쯤 피는 국화는 원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피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모양이다.

노란 국화 처음 따다 덩그란 전 지져놓고 / 작은 지게미 떠 있는 상락주도 처음 걸렀네 / 단풍든 가을 정원에 고아한 모임 가지니 / 이 풍류 어찌 억지로 등고하는 것과 같으랴 이 작품은 유만공의 ‘세기풍요’에 나오는 구절이다.

단풍이 드는 가을 향기로운 국화전과 상락주로 친한 친구들과 동산에 모여 풍류를 즐기는 장면을 노래한 것이다. 상락주는 뽕잎이 지고 가을 누에치기가 끝나는 시기에 마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은하며 향긋한 국화향과 술이 가을을 맞는 친구들과의 정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노래이다.

국화는 가을이 되어서 더욱 아름답고 좋은 꽃이 된다. 늦서리를 맞고도 화려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선비들은 사군자의 하나로 귀하게 여겼다. 늦가을에 찬 서리를 머금고 피어 있는 노란 국화는 장수와 영초(靈草)로서 은군자(隱君子)라고도 하였다.

국화는 피고 질 때까지 보통 60일 정도 피어있어 오랜 시간을 즐기게 하는 꽃이다. ‘열왕세시기’에는 ‘선비와 연인들은 단풍과 국화꽃을 관상하며, 이는 마치 봄에 핀 꽃과 버들강아지를 구경하는 양 싶은 것이다, 사대부는 거의가 중양절을 맞으면 높은 산에 올라가 시를 지어서 이날을 즐긴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빛이 누런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을 만든다’고 하였다. ‘규합총서’에는 꽃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 꿀과 설탕을 가미한 차로 국화차가 소개되어 있다. 중국의 오래전 시인인 소동파는 국화를 식품으로 여겨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가을에는 꽃을,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고 하였다.

국화차는 우리나라의 전통 꽃인 감국을 그늘에서 잘 말려 두었다가 끓여 식힌 물을 80도로 식혀 3분 정도 우려서 마신 차이다. 신선한 국화는 꿀에 재워 3-4주 정도 숙성시켜 국화청을 만들어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였다.

국화차는 눈을 시원하게 해 주고, 정신이 맑아지고 한여름에는 갈증을 없애주며 두통에 효과가 있다. 국화는 다년생초본, 국화과에 속하는 꽃으로 전국 각처에서 자생하고 재배도 한다. 성질은 무독하며 상강(霜降) 전에 꽃이 피었을 때 따서 음건(陰乾)한 것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 산과 들에 자생하는 야생국화로는 산국, 감국, 뇌향국, 산구절초, 갯국화가 있다. 10월 11월에 꽃이 핀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약으로 사용하여 왔다.

‘본초강목’에는 국화의 효능에 대해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위장을 편안하게 하며 감기, 두통, 현기증에 좋고 말린 꽃을 베갯 속으로 하면 두통에 좋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금수강산의 감천수(甘泉水)를 이용하여 좋은 차와 술을 만들어 먹어왔다.

달고 시원한 물에 계절에 맞는 여러 가지 한약재, 향이 나는 꽃, 과일, 열매를 이용하였다. 계절의 기운을 담아 빚은 술은 특유의 색과 향으로 먹는 이의 눈과 코와 입을 즐겁게 한다. 철마다 다른 가향주를 즐겨온 것은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즐기는 낭만이라할 수 있다.

국화로 빚은 국화주는 술을 빚을 때 국화를 넣어 빚는 경우와 빚어 놓은 술에 국화를 띄 우는 방법이 있다. 작년에 군청 마당에 핀 다양한 국화를 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를 느끼며 잠시 여유로운 휴식을 취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차를 돌려 군청 마당을 기웃거려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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