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과 이웃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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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풍속과 이웃사촌
  • 범상<석불사 주지·칼럼위원>
  • 승인 2015.01.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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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삼촌은 있어도 이웃 삼촌은 없다. 그 이유는 우리네 촌수 계산법에 있어서 자신보다 항렬이 높은 삼촌은 아버지와 아들사이에서처럼 수직적이고 종속적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에 반해 담장을 경계로 살아가면서 필요 할 때는 언제든지 서로 품앗이를 할 수 있고, 수평적이고 상호 의존적 관계를 유지하는 정다운 이웃은 멀리 떨어져 있는 피붙이보다 낫다는 의미에서 ‘이웃사촌’이라고 부른다.

이웃사촌에 대해 옛 어른들은 “팔백 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고 표현했다. 이것은 대문을 나섬과 동시에 만나게 되는 이웃(동네)이라는 사회공동체를 혈연관계만큼이나 중요시 했던 조상들의 삶의 방식과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웃과의 결속력은 자연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농사일이나 어로행위 등에 있어서 여러 사람이 반드시 힘을 모아야 하는 ‘울력’이 필요한 지역과 그렇지 않는 지역사람들의 유대관계와 소통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 홍주의 자연환경은 개인 혼자서 할 수 있는 (갯벌)어로행위가 불가능한 동해안이나 농토에 물을 공급하는 등 집단노동이 빈번한 지역에 비해 울력의 필요성이 적은 곳에 해당된다. 반면, 정치적으로는 ‘회덕의 은진송씨’, ‘연산의 광산김씨’에서처럼 지역을 장악해온 명문거족이 없었던 관계로 세력이 엇비슷한 문중과 문중이 오이나 칡넝쿨처럼(과갈문화) 서로 연계하는 수평적관계가 중요시 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동네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했던 마을제당(祭堂)분포에 있어서 다른 지역과 차이가 없는 것에서 본다면 이웃과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는 동일했다고 본다.

강무학은 <한국세시풍속기>에서 “율력서(律歷書)에 의하면 정월은 하늘, 땅, 사람 셋이서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대 부족이 하늘의 뜻을 따라 화합하는 달이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우리선조들은 새해 첫날에는 차례와 세배 등으로 혈연관계를 확인했고, 대보름에는 마을동제나 대동놀이를 통해 하늘[天]과 교통함으로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 왔다.

그런데 현재 우리사회를 들여다보면 혈연의 결속을 다지는 제사, 결혼, 상례 등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반면 이웃을 확인하는 동제나 대동놀이는 어른들이해오든 것이니 아예 접어치울 수는 없고 마지못해 유지하거나 보존차원에서 형식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농경사회에서처럼 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웃은 삶의 환경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사를 가서 이웃에 떡을 돌리거나 사업을 시작 할 때 고사를 지내고 주변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것 등은 이웃사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첫 번째 노력이다.

요즘은 대부분 아이의 첫돌행사는 동네를 벗어난 뷔페에서 혈족과 부모의 친구정도가 참여한다. 이것 역시 혈연확인이라는 한쪽면만 강조되는 것으로 본래의미가 퇴색되었다. 전통사회에서 백일 떡을 나누는 것은 자녀의 탄생을 널리 알리는 것이고 동네에서 첫돌에 잔치를 벌이는 것은 처음으로 이웃들에게 자녀를 소개시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첫돌이 지나면서 아이가 걸음걸이를 배우게 되고 그때부터는 대문 밖으로 나와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첫돌은 아이가 가족과 사회를 넘나들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배우는 시작점인 동시에 이웃어른들은 삶의 선생이자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현대사회가 각박해졌다며 자조적인 한탄을 하면서도 정작 이웃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기 보다는 가족과 소그룹의 관계구축에 열을 올리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가 공적업무를 양력에 근거하고 있는 관계로 이미 새해가 한 달이 지나가지만, 전통과 정서에서는 을미년 새해(음력)가 다가오고 있다. 새해에는 나와 담을 경계로 살아가는 이웃사촌을 생각하고 함께하는 지혜가 모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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