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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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손규성 <언론인·칼럼위원>
  • 승인 2015.10.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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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
영화 <암살>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조승우 분)은 미래를 정확히 통찰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소식을 듣고, 그동안 의열단 일원으로 항일투쟁을 하다 숨져간 동지들의 이름 한 명씩을 부르며 그렇게 앞날을 내다봤다.
그날 독한 배갈에 이름을 담아 추모했던 술잔에는 민족혁명당의 무장병력이었던 조선의용대의 순직용사 영혼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들에게 이들의 독립투쟁 사실과 그 죽음을 ‘결코 잊지 말라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절규였다.

그 절규를 듣는 날, 뜨거운 여름 한 가운데를 떠받치듯 붉은 정염을 토해내는 ‘목백일홍’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럽다. 목백일홍은 백일을 피는 꽃으로 알려졌지만, 백일 동안 피는 꽃은 아니다. 아침에 폈다가 저녁에 지는 데도 백일을 간다. 한 송이가 꽃을 피우다 지면, 다른 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려 백일 동안을 이어가는 것이다. 내가 죽어 밑거름이 되면 네가 일어나 그 뒤를 받치고, 네가 그 의미를 다하고 생을 마치면 내가 나서 그 뒤를 이어준다. 그게 배롱나무라는 목백일홍이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 그렇게 떨쳐 일어나는 것이 목백일홍이다. 목숨을 초개처럼 던진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의 독립투사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목백일홍의 한 송이 꽃이었다.

바로 <암살>에 나오는 ‘한국독립군 이청천 부대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이 그런 한 송이 목백일홍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들이 “그런다고 독립이 오겠냐?”고 반민족적 행위를 합리화할 때, 그녀는 비록 한 송이 백일홍이지만, 아니 백일홍답게 당당하게 말한다. “(이 한 번의 일로) 당장 조국의 해방을 가져오지 못할지라도,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총을 잡는다.

안옥윤이 속한 한국독립군 이청천 부대 독립군 500명은 실제로 중국 호로군 2000명과 함께 1933년 6월 29일께 헤이룽장성 왕청현 대전자령(大甸子嶺·다뎬쯔링)에서 한·중연합군을 공격하기 위해 대전자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이즈카 연대 1300여 명과 전투를 벌여 궤멸시킨다. 전리품으로 소총 1500정을 얻을 정도였던 대전자령전투는 봉오동, 청산리와 함께 항일독립투쟁의 3대 대첩으로 평가받는다.

안옥윤과 같은 목백일홍적 결사항전 의지는 이미 1920년 10월 21일 청산리전투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나타났다. 일제는 북간도일대 독립군을 ‘섬멸’하기 위해 함북 나남의 19사단 병력 전부 등 5개 사단 2만5000명을 동원한다.

이에 대항하는 독립군은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등 8개 부대 2500명. 병력과 화력의 엄청난 열세를 극복할 수 없어 처음엔 산간지역에서 치고 빠지는 유격전으로 나서기로 하지만, 독립군 병사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일본군과의 단호한 결전을 요구한다. 독립군 지도부는 결의를 바꿔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청산리전투를 대첩으로 이끈다.

이와 관련해 일제에 의해 강제로 뺏긴 독립유공자의 재산을 되찾아 주기 위한 ‘독립유공자 재산 회복 특별법’이 지난달 12일 홍문표(예산·홍성) 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됐다고 한다. 뒤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홍 의원 말마따나 “독립유공자들의 피탈된 재산을 찾아주는 일은 해방되자마자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이었다.

목백일홍이 여름에 가장 화려한 꽃으로 사랑받는 것은 온 대지를 태울 듯 한 강렬한 햇볕에 맞서기 때문이다. 수많은 송이가 피고 지고를 주고받으며 거대한 의미를 만들 듯이 광복은 그렇게 이뤄졌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은 광복 70년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았고 그렇게 잊고 있었다. 목백일홍은 해마다 피고 지고를 이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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