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리고 ‘생각하는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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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리고 ‘생각하는 백성’
  • 강국주 <녹색당·칼럼위원>
  • 승인 2015.10.1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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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벌초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 많았다. 친척들이 모이면 이런저런 세상사를 얘기하는 건 당연지사. 그 가운데도 압권은 정치 이야기인데, 문제는 정치 이야기는 대개의 경우 안 하니만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날도 그랬다.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세월호 얘기를 꺼내며 “세월호로 얼마나 많이 울궈먹었나”라며 마치 세월호 참사로 한몫 잡은 이들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어른이 평소 그런 편협한 생각-노무현은 좌파고 문재인도 그러하며 전교조는 좌빨 중에 좌빨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익히 아는 나로서는, 그 분이 하는 웬만한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지만 그날 세월호를 두고 하는 말 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어른은 아마도 세월호도 좌파의 ‘책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든 것은 그분의 말씀이 본시 그분의 얘기가 아니라 주류 언론에서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얘기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게 문제의 본질이다. 우리는 어느새 미디어(주류 언론)의 일방적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척이나 수동적인 주입식 교육의 당사자로 전락해버렸다. 미디어의 위력적인 주장 앞에 ‘내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때의 ‘내 생각’이란 바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식견 혹은 소견을 일컫는 말일 터인데, 먹고살기 바쁜 우리들은 그런 식견이나 소견을 갖출 만한 시간도 능력도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도록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체적인 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미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혹은 미디어 전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처럼 똑똑한 이들이 어련히 알아서 진실을 일러주지 않겠는가 하는 순진한 기대와, 설마 그처럼 똑똑한 이들이 거짓말을 하겠는가 하는 역시 순진한 기대와 함께.

문제는 이런 ‘생각 없음’이 우리 사회를 한없는 부패와 나락과 위험으로 빠뜨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갈파한 바 있건만, 외려 우리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 쪽으로 계속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다. 실업의 위험, 생계의 위험, 안전의 위험,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 우리 사회는 이 모두를 우리 개인에게 전가한다.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여겼던 ‘국가’에 대한 기대도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버렸다. 말 그대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에 우리는 내던져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는 백성으로 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바로 내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대 언론이 던져주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런 상태에서는 한 걸음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가 없다. 오히려 퇴보와 퇴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자, 이제 다시 물어보자. 세월호는 정말 좌파의 책동이었나? 좌파 이념에 물든 이들이 세월호를 ‘좋은 건수’로 삼아 지금까지도 물고 늘어지고 있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거대 언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머리로 생각해서 그렇게 인식하는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는 이제 우리 사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500일이 지났어도 의문이 풀린 건 없다. 선체 인양도 지지부진하다. 한마디로 세월호와 관련해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세월호 얘기를 하면 “이제 그만!” “또 그 얘기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정말 피곤한 건 500일이 넘도록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 나날을 가슴 졸이며 보냈을 유가족 아닐까. 유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예의 없음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하기야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 예의를 어찌 바라랴. 50년도 더 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쳤던 그 선생님이 한층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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