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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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7000원
  • 윤여문(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5.11.0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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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학기를 마무리하는 종강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사항이 몇 있다. 방학 동안 건강히 잘 쉬고, 부족한 전공 공부를 보충하거나 여행을 다니고, 역사에 남을 열렬한 사랑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을 해서 본인의 용돈을 충당하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 중에서 내가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은 아르바이트이다. “부모님한테 뜯어낸 돈으로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며 밥 먹고 선물을 사주는 것은 대학생으로써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니 대학생쯤 됐다면 본인의 용돈은 알아서 벌어 쓰라”고 당부한다.

그리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지난 학기말에 일러두었던 사항들을 간단히 확인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행을 다녀왔고, 학교 연습실에 남아 방학 내내 전공 연습을 했고, 열렬한 사랑을 했고, 또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두루 물어보니 편의점이나 커피숍, 피자배달 등 꽤 다양한 일을 했다고 한다. 내 학생들이 소중한 방학기간에 요즘 평균 시급인 6000원 정도를 받으며 고생했겠구나 싶어 측은하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서 용돈을 벌었다. 가장 오래된 일은 초등학교 시절 아침 등교 전에 직장 다니는 형의 구두를 닦는 것이었다. 구두닦이라고 해봤자 먼저 구둣솔로 먼지를 털어내고 구두약을 바른 다음 몇 번 슥슥 닦아내는 것이 전부였지만 등교시간에 늦지 않으면서 구두를 닦는 것이 때로는 고역이었다. 이렇게 해서 받은 용돈이 한 달에 5000원. 제 날짜에 정확히 용돈을 주지 않아 전전긍긍 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내 노동의 댓가인 5000원을 떼어 먹히는 일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성북구와 인천 어디쯤의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나르기도 했고, 군대 제대 후에는 공장에서 물품 박스를 하역하는 일로 1년 동안 호주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경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다양한 일을 해보니 ‘모든 일은 매우 힘들다’는 것과 ‘금액은 항상 일의 양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과 그리고 ‘금액을 받는 순간에는 그 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희미해지면서 그 금액 이상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는 재미난 깨달음을 얻게 됐다. 결국, 육체와 정신을 움직여 노동을 하고 그 노동에서 얻게 되는 금전적 보상으로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가치 있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아이의 나이 터울이 제법 있다 보니 이 두 놈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할만한 영화를 찾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두 아이들이 모두 좋아할 영화가 개봉했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영화 예매를 하려는데 아들이 묻는다. “아빠, 저는 그 영화를 주말에 친구들과 보면 안 될까요?” 아빠가 가족들과 함께 영화 보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면서 그렇게 말하다니 맥 빠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사내 녀석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애써 이해했다. “극장까지는 어떻게 갈래?” 그저 궁금해서 물었다. 시간이 맞는다면 내가 태워다 주면 될 것 같다. 걸어가기는 부담스럽고 버스를 타기에는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내 질문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택시를 타죠.” 했다. 나는 아들이 쉽게 대답한 ‘택시’에 주목했다. 그 짧은 거리를 가기에도 대략 7000원의 요금이 나올 것이다. 이 7000원은 아들이 쓸 수 있는 한 달 용돈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다. 눈을 치켜뜨고 다시 물었다. “뭐? 택시를 탄다고?”

나는 그 택시비 7000원은 폐지 줍는 할아버지들이 리어카를 몇 번씩이나 힘들게 날라야 하는 금액이고,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좌판을 내어 몇 시간 동안 채소를 팔아야 하는 금액이고,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한 시간 동안 좁은 편의점 계산대에서 서 있어야 하는 금액이고,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가 여러 층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바닥을 닦아야하는 금액이란 것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렇듯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힘들게 노동을 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절약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네가 쉽게 생각하는 그 7000원은 누구에게는 꼭 필요한 돈이고, 그 돈은 함부로 쓰이면 안 되는 즉, 소중하게 사용돼야 하는 돈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13살짜리 중학생이 귀찮고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버스 대신에 택시를 탈 수는 없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아들의 표정을 슬그머니 쳐다보니 아빠의 재미없는 잔소리를 오해 없이 잘 이해한 것 같아 대견하고 고맙다. 무엇보다 “그럼 모든 사람이 택시 대신 버스를 탄다면 택시 아저씨들은 어떻게 돈을 벌죠?”라고 묻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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