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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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 강국주<녹색당·칼럼위원>
  • 승인 2015.11.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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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에 온 땅이 메말라간다. 마실 물도 부족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급기야 보령댐 물을 받아 마시는 홍성을 비롯한 충남 서부권역의 8개 시군에서는 올 10월부터 제한 급수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절수를 통한 제한 급수 방식을 택한 다른 시군과 달리 홍성군만 유독 이틀에 12시간(밤 10시부터 익일 오전 10시까지) 단수라는 ‘특별한 처방’을 했다. 물론 이 특효 처방은 며칠만에 군민들의 원성만 산 채 흐지부지됐고 결국 다른 시군처럼 절수를 통한 제한 급수 방식으로 바뀌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비록 며칠간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물 문제는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말은 ‘행정 편의주의’라는 말일 테다. ‘책상머리 행정’의 전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며 “아 이렇게 하면 20%의 절수 효과를 볼 수 있겠구나” 하며 선택한 게 12시간 단수 조치였으리라. 효율성의 측면에서만 보면 안성맞춤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한두 사람의 머리에서 기획되고 그대로 실천되었다는 데 있다. 효율성의 측면만 따진다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 이런저런 고민을 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보다는 이 방식이 효과적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민주주의는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함께 논의하고, 소수의 최선보다는 다수의 차선을 선택하는 원리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 같은 고대의 철학자도 민주주의를 어리석은 인민들의 정치 형태라고 비판하며 뛰어난 몇몇 철인(哲人)들이 통치하는 귀족주의를 선호했던 것이다. 최선과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제일의 체제 원리로 인정하고 그대로 살 것을 합의한 사회다. 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상징화하고 있는 이 원리를 부정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살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이 원리를 현실에서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렵다. 홍성군의 단수조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전문가들의 효율성을 높이 사는 문화가 뼛속 깊이 스며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민주주의는 최선을 지향하지만 과격하거나 급진적으로 밀어붙이는 모든 ‘효율적’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고도성장’이라는 말과도 맞지 않는다. 어쩌면 ‘더 빠르게’ ‘더 많이’ 성장하려고 했던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은 정확히 옮기면 민주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효율성 우선주의’ 혹은 ‘전문가 우선주의’였던 셈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귀족주의’라 해야 옳다. 왕이 통치하는 전제군주국가나 귀족이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봉건시대에나 맞춤할 원리가 터무니없게도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분(紛)칠됐던 것이다.

최근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교과서 국정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을 감히 실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같은 1인 통치의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밀어붙이려 하니 말문이 막히고 만다.

일찍이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일리치가 오래 전 주장한 이 말이 현실로 그대로 드러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최선의 전문가(대통령, 장관, 정치인, 공무원 등등)들이 타락한 결과, 노인 자살율은 세계 최고이고 청년들은 일자리에 목숨을 내몰고 아이들은 미래를 꿈꿀 자유를 잃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모든 계층과 부문이 또다른 ‘세월호’가 되어버렸다. ‘헬조선’이니 ‘망한민국’이니 하는 말은 ‘최선이 타락한’ ‘최악의 현실’을 풍자하는 시구(詩句)가 된 것이다.
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政體)를 어떻게 다잡을 것인가. 양식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과 참여,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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