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지탱 기둥 세우고 만대 이을 동량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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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지탱 기둥 세우고 만대 이을 동량 세우다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2.04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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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갈산초등학교 25대 교장 이건엽 옹

이건엽(99·사진) 옹은 평생을 홍성지역의 교육문화와 지역발전에 힘써 온 홍성 교육계의 주춧돌이며 산증인이다. 올해 연세 99세로 100세를 앞둔 이 옹은 젊은 시절과 같이 여전히 눈빛이 반짝이고 또렷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귀가 어두워 질문을 종이에 쓰면 그것을 보고 답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7년 7월 2일에 태어난 이건엽 옹은 갈산면 운곡리가 본적이고 현재는 내갈리의 소박한 집에서 아내 이기순(94) 여사와 거주하고 있다. 갈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공부와 운동에 소질을 보여 심재원 은사를 따라 전북 고창에 내려가 고창 고보 5년제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과 6개월을 수료했다. 젊은 시절 평양의 조선 제철 주식회사에서 용도주임을 지내던 이 옹은 28세에 고향에 내려와 갈산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후 교장으로 정년을 마쳤다.

“배움에 목마르던 시절, 이 땅에 갈산중학교를 세운 것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종이에 지금까지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언제인지 써서 질문을 하니 이건엽 옹은 과거를 회고하며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개화기 이후 각 지역에서 계몽운동이 번지며 학교를 설립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이후에도 학교를 유치하기위한 치열한 경쟁이 많았다. 갈산은 한용운, 김좌진이라는 문무의 양대산맥인 명사들의 고장으로 지역민들의 열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1952년 개교한 갈산중학교는 이건엽 옹을 비롯한 지역유지들과 지역민들의 노고가 서려있다.

당시 갈산에 안동김씨의 기와집이 수십 채 정도 있었는데 김병안 씨가 1920년대 초기에 지은 집이 갈산중학교 본관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아흔아홉 칸짜리 김병안 씨의 기와집은 갈산과 서부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서로 중학교 유치를 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던 핵심 건물이었다. 1950년대 초 서부에서 이 기와집을 매입하기 위해 쌀 수백 석을 들여 비밀리에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서부지역에서는 기와집을 뜯어다가 서부에 중학교를 세우려 했다. 이 소식이 갈산에 전해지자 이건엽 옹과 갈산유지들은 갈산지역에 중학교 유치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었다.  삽시간에 갈산면에 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쌀 400석을 모금했다. 김병안 씨 기와집은 홍성군의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논란 끝에 서부의 매매계약은 파기됐다.

“33살 갈산초등학교 선생으로 재직하던 시절 서부지역에서 기와집을 매매했다는 소리를 듣고 갈산, 구항, 고북 등지에서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계약파기 배상금과 건물 매입비 등 갈산중학교를 유치하는 데 지역민들이 한 뜻으로 힘을 모았습니다.” 갈산중학교를 짓기 위해 쌀 1650가마 정도에 해당하는 비용이 필요했는데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모금을 했고 학교설립추진위원회 총무였던 이건엽 옹도 쌀 50가마와 농이소 한 마리를 기부했다. 당시 한국전쟁 중이었는데 이건엽 옹은 갈산중학교 승인을 받으려 이승만 대통령이 있는 부산에 내려갔다고 한다. 갈산중학교가 개교하기까지 이건엽 옹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이후 가곡초, 광성초, 안면도 신야초, 갈산고등학교, 혜전대학, 청운대학교 등 지역 내 학교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 갈산중학교 초창기 모습과 학생들.

또한 이건엽 옹은 교육뿐만이 아닌 지역발전에도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김좌진 생가 복원 및 사당 준공, 갈산 와룡천 제방공사 완공, 전기발전 사업, 홍주 이씨 종친 사업 등을 펼쳤다. 이건엽 옹의 장남 이영태 씨는 “아버지는 하늘이 내리신 분입니다. 평생을 봉사를 위해 몸 바치셨고 본인의 욕심은 일절 없이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옹에게 가르침을 배운 제자 이두호 씨는 “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름이 아닌 ‘아가야’ 라고 다정하게 부르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늘 ‘용기있게’ 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한겨울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손끝에 힘을 주고 쫙 펴면 안 춥다며 시범을 보이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건엽 옹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모내기를 하고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었다. 요즘은 들깨, 콩 등의 소작물을 키우며 집 안의 살림도 맡고 있다. 아내 이기순 여사가 6년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어 아내를 돌보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옹은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에 일어나 붓글씨 연습을 한다. 내년 갈산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맞이 휘호 연습을 새벽마다 하고 있다. 내년이면 홍성의 정신적 지주인 이 옹도 100세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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