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에서 꽃 피운 제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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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서 꽃 피운 제자 사랑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8.18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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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산중학교 2회 졸업생, 이건엽 옹 흉상건립 추진

홍성지역 발전과 교육문화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해온 이건엽(99·사진) 옹의 갈산중학교 내 흉상건립에 대한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옹의 제자이자 갈산중학교 2회 졸업생인 임태환(79) 씨에게 ‘제자가 바라본 이건엽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어려웠던 시절, 중학교가 없기 때문에 국민학교를 나오고 배움의 길이 없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경신고의 유병민 교장께서 이건엽 선생님의 댁에서 피난을 오셨지요. 선생님의 대청마루에서 배움에 뜻이 있는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셨어요. 갈산중학교를 설립하고 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갈산중학교 1기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이건엽 옹이 갈산중학교를 설립하기까지의 노고는 홍성지역에서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계몽운동이 번지고 각지에 학교설립 움직임이 일었다. 식량이 귀하고 자원이 부족했기에 학교설립이 녹록치 않았다. 당시 갈산면의 안동 김씨의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사이에 두고 서부면과 갈산면이 그 건물에 학교를 유치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서부면에서 비밀리에 쌀 수백석을 들여 기와를 매입하기로 계약을 맺자 이건엽 옹을 비롯한 갈산 유지, 지역민들은 갈산면 일대에서 고북면, 덕산면까지 궐기대회를 열었다.

결국 계약이 파기 되고 갈산면에서 안동 김씨 기와집에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와집을 매입하려면 쌀 1500석 이상이 필요했다. 당시 서민들은 쌀 한 되, 많아야 3되를 모았고 학교설립위원회 총무였던 이 옹은 쌀 50석을 내놓았다. 1952년에 개교한 갈산중학교에는 지역 유지들의 노고가 서려있는 유서 깊은 학교다.

이 옹의 대청마루에서 배우던 학생들은 어느덧 30명까지 늘어났다. 자리가 모자랐던 이 옹은 갈산초등학교 한 칸을 빌려 유병민 교장 등과 학생들을 1년 동안 지도했다. 중학교 설립을 인가 받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있는 부산에 두 번 내려갔던 이 옹은 마침내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당시 이 선생님의 대청마루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15살부터 20살 넘은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장가를 든 학생도 있었는데 배우고자 모여들었지요.” 30명의 학생들은 갈산중학교를 설립하자 2학년으로 편입되고 갈산중학교 2회 졸업생이 1학년으로는 1회 입학생인 셈이다. 임 씨는 직접 스크랩한 갈산중학교 설립 기사와 직접 그린 갈산중학교 모습을 보여주며 추억에 잠겼다. 

임 씨의 유년 시절 이 옹은 ‘호랑이 선생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옹은 교사 초기에 무척이나 엄격했다고 한다. “아침 조회시간에 아이들이 떠들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교단위에서 ‘차렷!’이라고 말씀하시면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렸었습니다. 이 선생님 한 마디에 아이들은 긴장을 바짝했었지요.”

이 옹은 학생들에게 엄격했던 것뿐만은 아니다. 당시 다리도 없던 와룡천에 장마철 비가 많이 와서 아이들이 냇가를 못 건널때면 이 옹이 직접 아이들을 업어서 천을 건넜다고 한다. 이 옹은 아이들에게는 엄격함보다 인자함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학생들을 ‘아가야’로 부를 정도로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임 씨는 이 옹이 갈산중학교 설립에 지대한 공이 있는 만큼 갈산중학교 나라사랑 역사관 개소에 맞춰 동상을 설립하자며 동문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중요한 것은 설립의 과정과 정신에 있습니다. 동상이 설립 될 수 있도록 동문들의 지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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