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진중한 질문, 르포르타주
상태바
삶에 대한 진중한 질문, 르포르타주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10.14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 마지막 공간
마지막 공간 윤홍은 저 | 삶이보이는 창 | 1만 3000원

청계천 복원사업은 지난 2003년부터 시작해 2005년 10월 1일 복원공사가 완료됐다. 총 사업비는 약 3600억 원, 연 인원 69만 4천여 명이 투입됐다. 청계고가로와 청계로 철거비, 청계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찾아 도시 한복판에서 쉼터로 이용되고 있지만 그 현장의 뒷면에는 청계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애환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삶이 보이는 창에서는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재학 중이며 학보사 기자인 윤홍은, 대영중학교 김유경 교사, 르포문학 김순천 작가, 전국금속노동조합서울지부ATK 이준님 지회장, 관악사회복지자원활동 홍경희 지원팀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이지홍, 사회진보연대 진재연 상근활동가, 삶창 문학교실 류인숙 공동기획, 김해자 시인,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최영환 상담팀장, 작은 책 안미선 편집위원, 이화여대 대학원생 연 정 등과 함께 약 10개월 동안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에 나섰다.

황학동, 밀리오레 러시아타운, 평화시장, 광장시장, 세운상가 등 청계천을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청계천 르포 작업의 기획과 진행을 맡은 김순천 작가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청계천은 열광하는 이미지와 현실의 삶 사이에 있다. 먼지 때가 잔뜩 낀 회색빛 콘크리트 고가로 상징되는 근대적인 삶이 무너지는 순간 사람들은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노니는 생태적이고 탈현대적인 삶을 욕망했다. 그 욕망은 진실하고 너무나 간절했다.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근대적인 삶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왜 그 욕망이 자신들에게 그렇게 간절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청계천은 다른 사회적인 문제처럼 이미지로 소비되고 이제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청계천 사람들은 삶을 견디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근대적인 방식으로 탈현대적인 시대를 견디며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신경제라는 탈현대적인 이미지 속에 그들은 더 고통당하고 파괴되고 있었다. 이미지는 탈현대, 현실은 더 나쁘게 변형된 근대였다.”

르포르타주 문학이 가지는 힘은 사실의 고발과 함께 진지한 질문을 모든 이에게 던진다는 데서 나온다. 단순히 팩트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에 대해 모든 이에게 진중한 질문을 던져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과정이다. 12명의 작가 혹은 활동가와 대학생들은 자신의 생활수단을 가지면서도 평일에는 짬짬이, 주말에는 온전히 시간을 내어 청계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갔다.

“우리는 기록을 하면서 청계천 자체만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도 복원되기를 바랐다. 그 분들의 삶도 근대적인 회색빛 삶에서 벗어나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노니는 삶이 되기를, 그들의 부재와 결핍, 생존 경쟁으로 생긴 수많은 상처들이 치유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원했다.”

황학동 고물노점상 김영범 씨, 황학동 서울다방 장군지 아주머니, 러시아타운 상인들, 평화시장 재단사 김홍균, 강애순 부부, 방산지하상가 매듭가게 박미현 씨, 광장시장에서 사탕파는 정씨 할머니, 대림세운상가에서 퀵서비스 일을 하는 정병문 씨 등 청계천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삶에 깊이 들어가는 르포를 꿈꿨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모습을 왜곡해서 냈다며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들은 각종 언론사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폐허 위를 걸었다. 그런 씁쓸한 폐허 위를 걸으면서 우리는 더 정확히 청계천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었다.(중략) 그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사라져 가는 것들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강제로 배제된 어떤 부분이고 삶에서 배제당한 흔적들이었다. 강제로 배제당한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우리들 삶 속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인디언의 영혼처럼.” 청계천 마지막 공간을 읽으며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왜 삶의 문화를 원하고 쉼터를 원하는데 조경시설과 놀이터로 만드는가? 왜 삶의 복원을 원하는데 개발을 하는가?” 이곳저곳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진중한 질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