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복 받은 동네, 상하중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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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복 받은 동네, 상하중 마을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0.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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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27>

농촌마을 희망스토리-홍동면 금평리 상하중 마을
수확을 앞둔 금평리 너른 들을 품은 상하중 마을전경.

홍동면 금평리로 들어서는 순간 미세먼지로 인해 답답했던 시야가 환해진다. 여름이면 초록이 주는 시원한 논 풍경이, 가을이 되면 황금빛 들녘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상하중 마을은 1960년대부터 최초의 유기농 농법이 시작된 마을로 주민 유운용 씨가 논보리를 심으며 품종개량을 하려고 했고, 모를 삼각형으로 심어 사람들이 ‘개발짝모’라고 칭하기도 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에는 주민들 대부분이 친환경 쌀을 생산했고 친환경 고추 농사도 함께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일거리는 훨씬 늘어났지만 마을 주민들 아무런 불만 없이 그 방식을 유지하면 살고 있다. 이제는 홍동면 금평리 상하중 마을이라 하면 유기농 특구로 대내외적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상하중은 귀농인들이 많은 마을로도 유명하다. 전체 가구 58가구에 귀농 가구가 15가구다. 유기농과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젊은 사람들의 귀농이 집중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용현 이장은 “우리 마을 귀농인들은 다 착해유”라며 귀농인들과 주민들간의 화합을 자랑하기도 한다.

마을회관 앞에는 우리동네 의원이 있다. 우리동네 의원이 문을 열기까지 열린 주민모임 10회, 준비모임 71회, 건강모임 3회, 창립 후 이사회 8회 등 모두 123회의 주민 모임을 가졌다. 이후 상하중 마을 건강관리센터를 희사 받아 시설을 갖추고 주변마을 주민들도 진료하고 있다. 현재 우리 동네 의원에는 이훈호 주치의와 간호사 1명, 물리치료사 1명, 사무행정 1명이 근무한다. 우리 동네 의원 신은영 간호사는 “주변마을 주민들이 자주 오시기에는 교통이 불편하다. 거리상으로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어르신들 걸음으로는 꽤 먼 거리다. 올 일이 있으면 차로 한 번에 오시거나 하는데 교통문제가 좀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한다. 홍동면은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우리 동네 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원내 처방이 가능해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을 앓는 주민들에게는 마치 마을사랑방 같은 곳이다.

상하중의 첫 번째 마을회관은 새마을운동 당시 지어진 것으로 현재는 창고로 사용된다. 당시 군에서 4번째로 지어진 회관으로 주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 마을 앞개울에서 리어카로 모래를 날라 벽돌을 만들어 지었다고 기억한다.
 

홍동면지에 따르면 상하중마을은 김애와 평촌의 이름을 따서 금평리라 했고, 동쪽은 효학리, 서쪽은 운월리, 남쪽은 문당리, 북쪽은 구정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상하중은 지장골, 거문배, 등너머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으며 지장골이 1반, 거문배가 2반이다. 지장골은 구정리와 인접한 마을로 옛날에 큰 절이 있다고 해 절골이라 불렀는데 그 절에 지장보살이 있어 지장골이라 불렀다. 본래 상하중은 순차적으로 상·중·하 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상중과 하중이 합쳐 상하중이 됐다.

지장골에는 예부터 큰 절이 있었고 지장보살이 살아 지장골이라는 지명이 유래됐다. 지장골 안쪽에는 장수바위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마을에 살던 부부가 아들 한 명, 딸 한 명을 낳아 기르던 중 지나가던 스님이 자식들의 기가 너무 좋으니 둘 중 하나는 죽어야 가문이 번성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고 싶어 남매에게 내기를 하게 했고 농간을 부려 장수가 마을 옆에 잇던 검은 바위를 던져 딸을 죽게 했다고 한다. 또한 금평리는 청주이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로 화신리와 마주하고 있지만 지금은 시나브로 줄어들어 각성받이 마을이 됐다.

상하중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범하게 산다고 평촌(平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큰 부자도 없고 크게 가난한 사람도 없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주민들의 후한 인심과 넉넉한 웃음이 반가운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우리 동네 의원은 마을 사랑방이기도 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전, 마을 할머니들이 서로의 집에 안부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해서 세 명의 할머니와 네 명의 할아버지들이 마을회관에 모였다. 상하중마을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떨어져 있어 할머니들이 옆집 마실을 가려면 한참을 가아만 한다. 그래도 마을에 일이 있을 때면 부지런히 유모차를 밀고 회관에 들어선다. “어제 왔으면 국수 먹었을텐디 어제 마을 청소했거든. 의원서 국수 삶아 먹었지. 동네 사람 다 모였다니께.”

아쉬운 마음에 커피만 홀짝 거리며 할머니들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는다. 스물다섯 살에 예산에서 시집 온 김옥순 할머니는 올해 여든다섯 살로 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많다. 회관 한 쪽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아직도 새색시 같기만 하다. 신인순 할머니와 이경숙 할머니도 마을 자랑에 한창이다.  

“우리 마을만큼 복 받은 동네 읎을겨. 어디 가 봐. 이런 동네의원이 워딨깐? 마을 사람들도 다 착허구 귀농한 사람들도 착허구 두루두루 다 좋아.” 평생 해온 농사일인데 유기농으로 하자니 더 많은 손길이 가지만 할머니는 단 한마디만 하신다. “워떡혀? 해야지.”

장에 나가 때 빼고, 광 내고, 이바구 늘어놓는다며 버스를 기다리는 마을주민들.
젊은 시절 외지로 나갔다가 서른 살에 귀향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용현 이장.
예전 마을나들이 모습.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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