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갑 선생이 남긴 32년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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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갑 선생이 남긴 32년의 숙제
  • 박성묵 칼럼위원
  • 승인 2018.11.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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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홍성 은하면 출신인 고 장용갑(1912~1986) 선생의 사후 32주년이다. 그렇다고 매년 주기마다 그를 추모한 것은 아니다. 그가 남긴 숙제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미해결의 장이다. 일제 강점기 홍성공업전수학교(현 한밭대학교) 항일학생운동을 펼쳐 퇴학을 당하고 결성금광의 강제노역사건에 앞장서 서부면민 1천여 명 서명운동을 펼치며 총독부와 4년간 투쟁했다. 해방 후 좌우익 갈등에서 그의 입장과 활동도 지역사의 한 부분이다. 특히 한국전쟁에 서 은하면 인민위원장을 맡아 많은 사람을 구해 ’한국의 쉰들러‘로 부르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나 긴급조치9호 위반 무효판결 후 억울함을 풀기위한 장용갑 선생 재판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법거래로 사법정의가 무참히 무너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숙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먼저 ’사법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장용갑 선생은 유신독재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9개월 옥고를 치렀다. 헌정을 유린한 박정희 군사독재자가 그에게 덮어씌워 만들어낸 기록은 왜곡이요 거짓이었다. 2013년 3월 박정희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한 긴급조치 1,2,9호가 위헌판결을 받음으로써 장용갑의 억울한 죄명이 밝혀졌다. 그가 죽은 지 27년 만이다. 이젠 떳떳하게 ‘아버지의 신분을 되찾아 줘야 한다’며 아들 재설은 부친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재설은 아버지의 억울함 뿐 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을 유린시켜 13억 배상을 요구한 국가배상판결 1심에서 2억 원이 넘는 배상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고법은 ‘국가는 10원도 줄 수 없다’는 희귀한 판결을 내렸다. 양승태의 추악한 사법거래 결과였다. 독재를 추종하는 판결은 장용갑 선생을 또 한 번 죽이는 농간이었다.

둘째 새로운 한반도 평화시대가 열리는 이때 분단을 지속시키는 냉전구조의 극복 문제다. 긴급조치 위헌판결 나오기 일 년 전 아들 재설은 부친관련 사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중 1946년 2월 16일 백범 김구 선생의 뜻을 판공실장 일연 신현상 선생이 쓴 답장편지글은 장용갑 선생의 사상과 높은 애국심, 그리고 나라를 위한 두 사람의 고민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그는 좌우익 대립 갈등의 파고 속에서 기존의 학문에 대한 자기반성의 기회를 갖게 됐다. 그는 스스로 ‘한 학설에 집착하지 않고 사상의 자유와 좌우익 갈등을 해소하고 통일국가로서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려는 실천가였다. 홍성에서 사회주의 운동과 남로당 참여로 사회개혁을 주도했다.

셋째 진정한 독립운동가로 선정하는 문제다. 아들 재설은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알고 싶어도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용갑 선생은 유소년시절 총명하고 강직한 면모가 있었다. 한편으로 그의 삶 일면에는 면암 최익현 선생을 우리나라 성웅으로 존경할 정도로 그는 주자학의 수기적 요청에만 성실하게 부응하고 있던 전통적인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홍성공업전수학교 항일학생운동에 가담하며 뜻을 굽히지 않고 항일의식을 키워갔다. 홍주의 유림들이 척사위정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그것을 극복하는 노력을 시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과감한 실천가였다. 결성향교에 다닐 때 한용운, 최익현 동상건립을 주장했고 한때 천도교(동학)에 입교해 사인여천 정신을 실천한 점은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 2013년 7월, 무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묵석고개에 묻혀있는 장용갑 선생 묘 앞에서 후손들이 고유문을 읽었다.

‘오늘 할아버지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습니다. 다시는 우리 사법부가 잘못된 판단으로 개인의 인권과 국가의 정통성에 누를 끼치는 행태를 반성합니다. 할아버지 이젠 편히 쉬십시오. 억울함과 회한은 손자들의 몫으로 돌려놓으시고….’

국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권력자와 재벌의 손을 들어주는 ‘판레기’가 있는 한 장용갑 선생의 숙제는 풀지 못할 것이다.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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