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가지 못한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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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로 가지 못한 속앓이
  • 박성묵 칼럼위원
  • 승인 2018.11.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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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와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저항과 여성해방의 방향을 모색해 왔다. 일제식민지 굴곡에도 300만 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동학이 여성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는 모정주의 사회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남녀평등을 넘어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펼쳐지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의 분출이 국가와 남성권력에 의해 거대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희생의 연속성은 21세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오히려 만연돼 있고 심각하다. 여성혐오, 성폭행 등의 범죄의 내재성과 일치한다. 여성피해자에게 국가의 보호시스템은 ‘너그럽게 묵인’돼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국가는 없었다고 말한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릇에 물이 차면 넘치듯 누적된 적폐를 청산할 기회가 찾아왔다. 올 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투운동으로 폭로된 것이다. 현직 검사 서지현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내의 안태근 범죄자를 비롯한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 운동을 촉발시켰다. 저명한 시인, 극작가, 심지어 안희정 전 도지사 등 사실을 폭로한 여성피해자들의 용기는 넘쳐났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무참히 짓밟힌 여성의 인권 그 자체였다. 울며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국민적 공감의 메시지도 전달됐다. 여권지위향상이 당연시되는 사회의 한쪽에선 ‘야만적’ 폭력이 여전한 현실을 아프게 일깨워 줬다. 어떤 남성가해자는 성폭력 침해에 대해 성실히 사죄하고 생을 마감해 죽음 그 자체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저질러진 성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미투운동이 연일 매스컴을 도배할 때 평소 존경하는 선배 시인이 사무실에 왔다. 시인은 ‘000 죽일 놈이다. 이번 기회에 죄 값을 물어 문단에서 지워야 한다’고 분기를 토했다. 그 죄값은 여성문학인에 대한 성폭력이었다. 당시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해 확산되고 있을 때였다. 선배가 그토록 분개했던 죄값을 받아야할 사람의 흔적이 다름 아닌 홍성, 예산에 걸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피해 여성들의 미투 움직임은 별 반응이 없었다. 몇몇 남자 시인은 잔뜩 기대했다. 이렇게 시들어지다니. 미투를 ‘진영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더 크고 넓게 연대해야 한다’며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가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정치적 스펙이 낮은 예산·홍성지역구가 말해주듯 그런 곳이지. 별수 있겠나. 괜한 공분만 쌓였다. ‘성폭력을 문학으로 지도해 주신 선생의 기행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고발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이유는 비록 사회인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문학 사제지간인데 보복이 두렵고 성폭력 팩트가 괜히 사회여론화 되면 더 골치 아프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예산 홍성은 아직 ‘을’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사회인가? ‘갑’들에게 너무 쉽게 주어지는 면죄부면 그들이 또다시 본색을 드러낼 것이 아닌가? 피해자인데 왜 아픔이 없고 남들 외치는데 속 시원하게 외치고 싶지 않겠나. 미투행진에 갈수 없었던 깊은 고뇌와 속앓이가 언제든지 기회의 광장에서 함께 공유되길 바라며 그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확신한다. 미투가 조곤조곤한 외침이었으나 온 세계를 울리던 목소리였다는 사실을 이미 목도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속앓이 하던 모든 피해자는 권력의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과 조금씩 자기 삶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며 정당한 권리의 성을 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미투는 남녀 간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으로,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날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어느 시인의 외침이 새롭게 들린다.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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