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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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의 늪
  • 남동현 칼럼위원
  • 승인 2018.11.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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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K씨는 S전자 과장으로 평소 직장 내 평가는 물론 가정에서까지 완벽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늘 풀을 먹인 듯 빳빳하고 깨끗한 옷차림을 유지하고, 머리 스타일도 엄격한 가르마로 정돈돼 있으며, 아침식사, 출근시간, 그리고 출근 직후의 행동 절차들도 어제와 오늘이 항상 비슷한 편이다. 그의 자리는 항상 깨끗하며, 각종 책들과 문구류들, 그리고 업무용품들이 줄을 맞춰있다. 조금이라도 더러워지거나 정리가 덜 된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을 불편해하며, 서류 작업에서도 작은 오탈자나 실수 등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직장인 K씨와 같은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으며 어쩌면 나 또한 직장인 K씨 같은 성향을 일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 삶의 특정 영역에서는 약간의 완벽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완벽주의적인 경향은 직장 일을 하거나 가정 일을 돌볼 때 보통의 경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효율성이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언제나 완벽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직장 상사나 주변 동료가 미워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 중 몇몇은 이러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주의자에게도 지나칠 경우에는 몇몇 그늘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무엇이든 규칙 하에 이뤄져야 하고, 조직화돼 있어야 하며, 계획적이어야 한다. 또한 일에 지나치게 헌신하고 일과 관련한 주변 사람들까지 과도하게 통제하는 나머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때로는 이러한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세세한 세부요인들에만 집착하느라 큰 숲을 보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러한 성향이 지나치게 강화될 시에는 평상시 감정 표현이 제한되고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마치 ‘살아있는 기계’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반면 감성적인 부분은 메마른 것처럼 보인다.

정신분석적 영역에서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의 이면에 ‘처벌에 대한 불안’이 내제돼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즉 언제나 실수 없이 완벽하게 살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비난이나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무의식 중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의 성장경험이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엄격하고 통제적인 성향의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비난을 받은 경험이 많다거나 또는 많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로 크게 기억될만한 경험을 했다면 이러한 정서적 경험이 내재화돼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누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비난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마음 속에는 언제든 비난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만성적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기 쉬우며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나머지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늪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성’에 의한 삶이 아닌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따뜻한 대인관계 경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남동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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