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 불어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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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 불어오는 날
  • 유선자 칼럼위원
  • 승인 2019.03.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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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매섭다. 봄이 오는 길에서 지상은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이다. 봄바람이 고양이 앞 발톱처럼 날카롭게 파고든다. 바람이 옷자락에 파고들자 몸은 자동으로 움츠러든다. 베란다 틈으로 윙윙대며 오가는 바람을 일컬어 우리는 꽃샘바람이라 한다.

뒷산에 올라 보니 꽃샘추위 속에 피어난 앙증맞은 ‘꽃마리’가 벌써 봄볕 속에 웃고 있다. 곁에는 아직 매달려 있는 마른 형태의 꽃잎도 있다. 무엇을 잉태하려고 저리 어렵게 꽃 대궁을 붙들고 생의 열반을 구할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봄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나뭇가지에 보이지 않던 꽃눈들이 경칩 절기 전후로 여기저기 돋아나오는 생명력을 만남이다. 언 땅속에서도 뿌리를 지켜 온 자연의 고마움을 볼 수 있음이다. 살아 견뎌 온 생명에게 조물주의 축복을 감사로 느낄 수 있음이다.  

잠시 창밖을 보면서 성장기 아이를 생각한다. 현재 보이는 모습이 마치 전체의 상황처럼 혹평하는 일은 없는지, 엄마가 봄 맞은 사춘기 중년처럼 까칠한 면은 없는지 물어본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잠재력을 선입견으로 초봄의 항구에서 머뭇거리게 하지 않는지 살핀다. 세상의 만물처럼 제 나름의 꽃을 감추고 때가 되면 제 향기를 가진 꽃대를 내밀 것이라는 믿음을 모아본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세상 모든 생명은 제 꽃을 피우기 위해 나름대로 에너지를 모은다. 사람도 제 때 움트려고 천천히 발돋움을 연습한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것은 뿌리를 더 깊이 내리기 위한 자연의 순리다. 힘들어도 거센 꽃샘추위를 이겨 내야 따뜻한 봄에 가슴 벅차게 웃을 수 있다. 앞질러 날개를 펴지 않는다고 성급하지 말자.

아이를 통해서 여자는 두 번 태어나는 것 같다. 한 번은 딸로서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아이들의 어머니로 태어나는 일이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 산고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모습은 꽃샘추위를 이겨내는 자연의 만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의 모습에서 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신의 은혜가 없다면 그 여정 또한 우리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주어진 삶의 크기에 한줄기 봄볕에 먼저 행복해지자.

그런데도 세월이 갈수록 아이의 생각과 나의 기대치에 거리감이 생김을 느낀다. 이 또한 바람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리라. 세월을 돌아보면 세대 차이도 엄청나게 크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은 필수이리라. 찬 겨울을 이겨 낸 후 꽃샘바람마저 지나야 참꽃이 피어나지 않던가. 변화를 얻기까지 진통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산모의 통과의례처럼 삶 또한 그러하다.

꽃샘추위를 꽃이 피기도 전에 꽃피는 것을 시샘하는 바람이라 해도, 꽃샘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매화 꽃, 산수유 꽃이 피어나고, 동심의 언덕에서는 노란 민들레꽃들이 하나 둘 피어올라 행복해지는 여심까지 꽃이 피어난다. 긴 겨울, 들판의 식물들도 꽃대 꺾이지 않고 수천 번 흔들리며 바람 속에 서 있었기에 새 봄을 맞는다. 미세 먼지 가득한 대기를 보며 청정한 유년의 하늘이 그리웠다.

사람도 만물도 모두 힘든 시간이었으리라. 그래도 자연의 섭리는 꽃샘(泉)이 얼지 않도록 깊은 땅속에서 봄을 준비했다. 봄이 오면 꽃 피우게 하려는 어머니의 지심(至心)과 맞닿아 있었다. 바람이 분다.

유선자 <수필가·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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