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의 고귀한 독립정신 받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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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의 고귀한 독립정신 받들어
  • 전상진 기자
  • 승인 2009.11.0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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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백야사에서 추모대제

백야 김좌진 장군을 추모하기 위한 대제가 지난 25일 11시 갈산면 행산리 백야사에서 거행됐다. 

사단법인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회장 송복희)가 주관한 이날 대제는 장군의 외증손자인 송일국(38․탤런트) 씨를 비롯한 유족, 각 기관단체장 및 지역유림, 마을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초헌관에 이규용 홍성군의회 의장의 전폐례와 초헌례, 아헌관에 한경원 홍성보훈지청장의 아헌례, 종헌관 이동의 홍성교육장의 종헌례 순으로 거행됐다. 

홍성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1889년~1930년)은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태어나 1905년 가노를 해방시켜 전답을 무상으로 나눠줬고, 대한제국무관학교에서 새로운 군사학을 배웠다. 을사조약 체결 후 국권회복의 뜻을 펼치기 위해 1907년 고향으로 돌아와 호명학교 설립, 대한협회 홍성지부를 조직하는 등 본격적인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17년 대한광복단을 조직 활동했고, 1918년 해외 독립운동가 39명과 무오독립선언서를 선포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휘하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을 맡아 1920년 10월 20일~26일 백운평전투를 시작으로 전개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3300여명을 섬멸하는 등 독립전쟁 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이후 1925년 신민부 창설, 1928년 한중반일 연합군 조직 결성, 1929년 한족총연합회 결성 등 독립군양성과 독립활동에 주력하다 1930년 1월 24일 고려공산당 박상실이 쏜 흉탄에 맞아 순국했다. 1934년 유해를 고국으로 운구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밀장했고, 1957년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산 51번지에 이장했다.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또한 지난 22일에는 유족 및 각 기관단체장, 마을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장군묘소에서 추모제향이 거행됐다. 

한편 <홍주신문> 제94호(2009년 10월 16일자) 손규성 한겨레신문 편집부국장의 <손규성의 홍주골 톺아보기> 기획기사 중 '백야 이름을 딴 축제하나가 없는 것은 아쉽다'는 표현은 백야 김좌진 생가지에서 치러지고 있는 '백야 김좌진 장군 전승기념 축제'를 알지 못하고 쓴 글이란 지적이 있었다. 현재 갈산 생가지에서는 백야축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홍성군재향군인회가 주관하는 전승기념 축제가 지난해까지 6회째 치러지고 있다. 축제추진 관계자는 "올해는 신종플루 확산 여파로 취소됐지만 내년에는 더 알찬 축제를 만들어 백야 김좌진 장군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고 업적을 재조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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