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 덩굴과 함께 엮어 온 힘겨웠던 삶
상태바
댕댕이 덩굴과 함께 엮어 온 힘겨웠던 삶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0.12.17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도무형문화재 31호 댕댕이장 백길자 씨


어린 시절 댕댕이 덩굴 바구니를 엮는 할머니의 손길이 마냥 신기했던 적이 있다. 정성스레 다듬은 댕댕이 덩굴을 손으로 엮어 바구니가 되고 채반이 되는 모습은 보고 또 봐도 신기했다. 장롱 위의 반짇고리, 부침개를 펼쳐놓는 채반, 손톱깎이나 귀이개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아놓는 화장대 위 수납그릇, 모양과 크기가 각각인 바구니들은 요즘 감각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짚․풀 공예의 전통을 이어가는 백길자(광천) 씨. 홍성문화원에서 마련한 백 씨의 특별기획 전시전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 그를 만나 이름 없는 들풀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살아온 40여 년의 삶을 들여다봤다.

국내 유일하게 댕댕이 덩굴로 생활 공예품을 만들며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된 백 씨는 당진에서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쁜 농사일을 잠시 쉴 때면 부모님은 으례 댕댕이 덩굴로 바구니․채반 등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부친의 댕댕이 엮는 모습이 신기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며 부친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엮어보다 잘 못 엮어 혼도 많이 났다고 한다.

백 씨는 "어린 마음에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어서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아버지 몰래 엮다가 잘 못 엮어 푸는 것이 더 힘들다며 많이도 혼났다"고 회고한다.

이러했던 백 씨의 댕댕이장으로의 삶은 1973년, 당시 우체국 집배원이었던 남편 김성환(63) 씨를 중매로 만나 장곡으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 시작됐다. 넉넉지 않은 시댁 살림에 어렵게 지내던 백 씨는 밭일을 나갔다 밭둑에 널려있는 댕댕이 덩굴을 발견하고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백 씨는 󰡒당시 장곡에서 광천까지의 버스비가 40원으로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 다니던 시절,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생활비를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 아름 끊어 내려오며 뿌듯 했었다󰡓고 지난 날을 회상한다. 이때부터 백 씨는 집안에서 필요한 수저집, 채반, 꽃병, 받짇고리 등 생활용품 일체를 만들어 사용했다.

우리네 삶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었던 댕댕이 덩굴이 소박한 멋이 풍기는 풀 공예의 재료가 되기까지는 백 씨의 수많은 손길이 닿아야 한다.

산에서 끊어온 댕댕이 덩굴의 듬성듬성 푸른 이파리가 달린 가늘고 기다란 줄기 뭉치를 다듬어 부드럽게 하기위해 서너 시간 물에서 삶아낸다. 삶은 댕댕이 덩굴은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루정도 볕이 좋은 곳에서 말린 후 댕댕이 덩굴에 달린 눈을 제거하기위해 일일이 손톱으로 긁어내야 한다. 해서 백 씨의 손은 성할 날이 없다. 이렇게 준비된 댕댕이 덩굴은 옷감을 짜듯 씨줄과 날줄로 엮어 모양을 만들며 긴 인내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공예품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만든 공예품이 수천 점은 될 거라는 백 씨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속상하다는 말부터 먼저 한다. 도자기 형으로 다양한 무늬를 수놓으며 근 3개월에 걸쳐 정성들여 만든 작품이 축제 전시장에서 전시도중 잃어버려 속상한 마음에 일주일동안 앓아 누웠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작품은 부친이 시집가서 쓰라며 만들어주신 50년 된 바구니로 지금 껏 사용해왔지만 전혀 모양의 변형 없이 앞으로 50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거라며 이제는 고이 모셔두며 부친이 그리울 때 꺼내볼 거라 말한다.

댕댕이장으로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부여 대백제전을 비롯해, 외암 민속마을 축제, 부천 엑스포,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 등 수많은 곳에서 전시를 하며 댕댕이 공예를 널리 알리는데 앞장 서왔다.

백 씨는 "댕댕이 덩굴 공예에는 우리 조상들의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작은 생활도구 하나라도 자연에서 만들어 쓸 줄 아는 지혜와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민의 삶을 대변하듯 투박하면서도 단아한 멋과 자연그대로의 색감은 지금의 플라스틱 제품과는 비교도 할 수도 없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러한 백 씨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남편 김성환 씨다. 우체국 집배원이었던 김 씨는 우편 배달을 하며 틈틈이 댕댕이 덩굴을 끊어다 주는 등 뒷바라지를 해줬다. 김 씨는 정년퇴임 후에는 본격적으로 부인의 뒷바라지를 위해 공예를 배우며 노력한 결과 2006년 홍성 댕댕이장 이수자로 등록됐다. 또한 짚공예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백 씨와 함께 농업기술센터를 비롯해 전국을 누비며 짚풀공예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또 한사람의 지원군은 바로 둘째 아들이다. 댕댕이 공예에 무관심한 큰 아들과는 달리 작은 아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곧잘 어머니인 백 씨를 도우며 틈틈이 익힌 실력으로 남도짚풀문화재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백 씨는 󰡒천안, 온양 등에서 배워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힘들고 돈벌이도 안되는 짚풀공예를 지속적으로 해보겠다는 사람은 없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짚풀공예 작업 특성상 장시간동안 앉아 작업을 하다보니 허리 통증과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다는 백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공예품을 만들 것이라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옛 것의 소중함을 전할 수 있도록 집에 쌓아놓은 공예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라고 전한다.

댕댕이 덩굴과 함께 힘겨웠던 삶을 엮으며 살아온 백 씨의 미소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큰 욕심없이 우리 것을 지키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온 탓이 아닐런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