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발언 배경 관심 증폭…청와대 책임자 문책론 대두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 백지화 선언에 따른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일 이 대통령의 신년방송좌담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질의답변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작했고, 과학벨트 문제가 나왔다"면서 사실상 '말실수'라는 쪽에 무게를 뒀으나 일각에서는 의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신년방송좌담회서 과학벨트 질문 예상 못했다?
청와대의 해명대로라면 이 대통령은 이날 신년방송좌담회에서 과학벨트에 대한 질문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으로, 설득력은 당연히 떨어진다. 지난 해 12월 8일 과학벨트 특별법이 통과된 이래 충청권을 중심으로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돼 왔고, 임기철 청와대 비서관의 공약 백지화 가능성 발언까지 겹치면서 이 대통령의 의중에 시선이 모아졌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언론은 이 대통령이 신년방송좌담회에서 과학벨트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던 터라 청와대가 이 같은 기류를 모를 리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설령 이 대통령 본인은 몰랐다 하더라도 신년방송좌담회를 준비했던 청와대 스텝들조차 과학벨트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방송 진행 콘셉트가 당초 계획과는 달리 일문일답 형식으로 바뀌면서 생긴 일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이래저래 납득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집에 포함된 줄 몰랐다?
공약 백지화 발언 못지않게 충청권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은 "공약집에 있지 않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다. 물론 실언이다. 문제의 발언이 있기 전 자유선진당은 이 대통령의 과학벨트 관련 발언을 모은 7분짜리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기에 충청권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는 논란이 일자 지난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진실이 아니다"며 "17대 대선 메니페스토 대전ㆍ충북ㆍ충남편 34쪽에 있고, 특히 31쪽 세종시 공약에는 "행정복합도시의 기능과 자족능력을 갖추기 위해 과학벨트와 연계, 인구 50만의 도시를 만들겠다"라고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대전일보>는 지난 2007년 5월 9일자로 보도된 이명박 당시 후보와의 인터뷰를 8일 소개했다.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이곳을 행정도시, 대덕특구, 오송생명과학단지 등과 함께 과학도시 트라이앵글을 형성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심장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자유선진당도 "17대 대선 당시 선관위에 제출한 공약서와 서로 다른 것이 있는지"를 청와대 등에 공개 질의하는 등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선 상태다.
이 대통령 과학벨트 발언 의도적일 가능성은?
이처럼 이 대통령의 과학벨트 관련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서, 특히 "공약집에 있지 않다"는 말도 황당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상당히 의도된 것 아니냐는 시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야권 인사들 가운데서는 "충청권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지지성향이 강하다보니,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을 파기, 결과적으로 친이계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결국 충청권을 사석(捨石)으로 삼아 지지기반인 영남을 비롯해 호남의 표심을 겨냥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대구ㆍ경북이 과학벨트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마당에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약속 이행'을 촉구하기는 어려울 거란 판단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 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 역시 세종시 때와는 달리 호남권이 유치 경쟁에 뛰어드는 등 내분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적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 대통령이 이처럼 고도의 정치적인 전략을 구사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충청권 인사들, 청와대 관계자 문책론도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충청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문책론도 나오고 있다. 지난 번 정두언 최고위원이 임기철 비서관에 대한 문책을 촉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박성효 최고위원은 7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이 대통령이 과학벨트에 대한 충청권의 여론을 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고, 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대통령이 아마 착오를 일으키셨거나 주변에서 대통령에게 정확한 자료를 보좌해 드리지 못한 게 아닌지 싶다"라며 우회적으로 책임론을 부각시켰다.
윤석만 대전시당위원장도 <디트뉴스24>와의 통화에서 "'공약집에 없다'는 발언은 실수인 것 같다…의도된 발언인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청와대 참모진에 대해서는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내부에서는 여전히 이 대통령의 발언, 즉 "(공정한 평가를 통해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 오히려 충청도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과학벨트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며 "정치적 결정이 아닌 합리적 평가에 의해 과학벨트의 입지가 선정되는 것이 충청권을 위해서도 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역시 충청인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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