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육상유망주 발굴'육상명가'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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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육상유망주 발굴'육상명가'로 만들자"
  • 서울/한지윤 기자
  • 승인 2011.04.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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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출신 전용환 대표, 동아마라톤대회 준우승 정진혁 후원


지난 3월 20일 오전 8시 봄을 재촉하는 비와 함께 눈발까지 흩날린 가운데 섭씨 3℃라는 악조건의 날씨 속에서 서울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앞을 출발해 청계천~신설동~군자교~자양동~석촌호수를 거쳐 잠실종합운동장에 들어오는 42.195㎞ 풀코스에서 벌어진 2011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2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 레이스에서 예산 삽교고 출신의 정진혁(21ㆍ건국대)은 2시간09분28초로 압데라힘 굼리(35ㆍ모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서울국제마라톤대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인정한 최상급 '골드 라벨' 레이스다. 정진혁은 이날 준우승 상금 4만 달러와 함께 2시간9분대 타임 보너스로 5000달러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중앙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0분59초를 찍고 8위를 차지했던 정진혁은 마라톤 풀코스 세 번째 도전 만에 메이저대회에서 개인 최고기록으로 은메달을 따내며 단숨에 한국 마라톤의 간판 주자로 떠올랐다. 5000m를 뛰다 마라톤에 입문한 정진혁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 마라톤에 데뷔해 2시간15분01초를 찍고 10위에 올랐었다. 정진혁은 세계 정상급 철각과 초반부터 선두권을 형성하며 '이변'을 일으킬 가능성을 보였다. 이어 30㎞ 지점부터 선두로 치고 나온 정진혁은 35㎞ 지점에서는 이번 대회 참가 선수 중 가장 기록이 좋은 굼리(2시간05분30초)를 20m 가까이 앞서며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나 잠실대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내려온 37㎞ 부근에서 굼리에게 추월당했고 이후 막판 스퍼트를 낸 굼리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이날 정진혁의 기록은 국내 마라톤 사상 대학생 최고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지난 1996년 경주에서 열렸던 제67회 동아국제마라톤 대회에서 당시 건국대생이던 김이용(38)이 세웠던 2시간9분36초의 기록이다. 풀코스 도전 3번째 만에 국내 최고 수준의 선수로 두각을 나타낸 정진혁은 2시간 5분대 및 6분대의 기록을 지닌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가한 이번 레이스에서 전혀 밀리지 않으며 차세대 한국 마라톤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삽교고등학교 시절 중장거리 선수로 뛰었던 정진혁은 지구력과 스피드를 겸비했기 때문에 경험만 축적한다면 국내 최고 수준의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완주할 때마다 기록을 큰 폭으로 단축하고 있는 정진혁은 한국마라톤의 영웅 황영조 이봉주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진혁은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컨디션이 딱 맞아떨어져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는 35㎞ 지점부터 스퍼트를 낼 예정이었으나 페이스메이커가 30㎞ 부근에서 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치고 나갔다"며 "8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잘 달리고 내년 런던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내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키 171㎝, 몸무게 58㎏로 마라톤 선수로는 적합한 체격을 갖춘 정진혁은 지난 1월 돌아가신 고(2) 임찬순 예산육상연맹 회장을 떠올리며 열심히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아쉬움이 남지만 자신감도 얻었다. 새 기록에 대한 목표가 생겼다"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2시간8분대 진입에 도전하고 열심히 훈련에 매진해 내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신기록을 경신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진혁의 후원자 홍성출신 전용환 하나농산 대표
정진혁의 후원자는 다름 아닌 홍성출신으로 경기도 양평에서 하나농산을 운영하는 전용환 대표다. 전 대표는 지금은 '버섯 박사'로 불리지만, 원래 그의 꿈은 육상선수였다. 홍성군 광천읍에서 태어난 전 대표는 충남도대표 육상선수로 뛰면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희대 체육학과에 다닐 때 운동 중 인대가 끊어지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젖혀두고 달리기만 했는데, 앞이 막막했다고 회고한다.

대학 중퇴 후 조그만 건설회사에 들어갔는데, 얼마 안 가 회사가 문을 닫아 고향인 홍성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더니, 한 달에 쌀 2가마 값을 겨우 쥘 수 있었다고 한다. "이래서 다들 농촌을 떠나는구나" 절감하면서 돌파구를 찾던 그에게 농촌지도소에서 일하던 고등학교 선배가 "일본에 견학 갔다 왔는데, 자동화로 버섯을 키우더라"는 것이다. 팽이버섯이 비싼 가격에 팔리던 때라 "버섯이라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문을 받기 위해 농촌진흥청을 찾아갔더니 "미생물학과를 졸업했느냐?"고 물었다. 문외한이라고 했더니 "버섯 농사는 의지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니 1~2년 제대로 배우고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배울 만한 데가 없었다. 연구소를 갖춘 일본 버섯 농장을 찾아가 잡부로 일하며 4년여에 걸쳐 기술을 터득했다.

그는 이후에 가시밭길을 자초했다. 경기도 양평에 최고의 버섯 농장을 짓겠다며 일을 벌인 것이다. 그는 5남매 중 장남으로 전자공학 박사로 삼성전자에서 3억 원 넘는 연봉을 받던 둘째 용만 씨와 설비회사에 다니며 기계라면 못 만지는 게 없던 막내 용구 씨가 사표를 쓰고 합류했다. 형제들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4~5년간 밤낮없이 연구에 몰입한 결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육상선수 때부터 몸에 밴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 덕이라고 말한다. "마라톤을 할 때도 너무 힘들면 도로에 뛰어들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그걸 이겨내고 1등에 도전하는 게 스포츠 정신이지요." 그의 버섯 역시 1등에 도전했다. 그리고 우리의 농업에 장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 홍성의 농사꾼 아들의 꿈인 것이다. 또한 "홍성도 충남도청이 2012년 이전함에 따라 도청소재지다. 앞으로 홍성을 '육상의 명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정진혁 등 삽교고육상부가 해체될 당시 홍성의 고교에서 육상부를 육성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육상인구의 저변 확대를 통해 육상 유망주를 발굴해 '육상사관학교'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육성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는 게 전 대표가 홍성군체육회 부회장으로서의 꿈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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