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心統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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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心統一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6.3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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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 정암사 범상스님
세상에서 전쟁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전쟁은 반드시 파괴와 살육이 따르기 때문이다. 방법이 선(善)하지 않으므로 정의로운 전쟁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정의로운 전쟁을 말하고 승리의 영웅을 칭송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반공포스트’를 보면서 자랐고, 학창시절에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가슴에 구호가 적힌 리본을 달고 다녔다. 6월이 되면 학교에서는 어김없이 반공웅변대회가 열렸고, 어린 연사들은 하나같이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을 외쳐댔으며, 마지막은 전교생 모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합창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 같은 교육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50이 되어가는 필자의 나이를 감안해 볼 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을 때려잡고 공산당을 쳐부숴야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김일성을 때려잡고 공산당을 쳐부수는 것은 통일이 아니라 전쟁이다.


우리가 겪었던 6·25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학자들은 한국전쟁을 이해하지 않으면 현대 세계사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만큼 미·소간의 치열한 패권다툼이 만들어낸 전쟁이다.
1949년 ‘소련의 핵실험성공’, ‘친미정권인 장개석의 실패와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아시아의 병참기로 중국을 활용하려 했던 미국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월남 공산당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프랑스의 패색이 짙어짐으로써 미국은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는 소련의 견제가 절실했고, 소련 또한 194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봉쇄를 뚫어야 할 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데올로기는 만들어졌고 서로가 서로를 때려잡아야 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는 결국 6·25전쟁으로 이어졌다.


각설하고, 분단 이후 남북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통일의 길이 멀어 보이는 것은 바로 위에서와 같이 전쟁을 통일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과 행동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마음에 따라 그 의미와 결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지난 3월 일본의 대지진으로 발생된 ‘후쿠시마 원전사태’에서 보듯이 평소에는 원전·수력·화력 할 것 없이 동일한 전기처럼 보이지만 막상 사고가 났을 때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통일은 남북이 일심합일(一心合一)했을 때 가능하며, 일심은 끝없는 자기부정(파괴)을 통해서 도달되어진다. 여기에서의 부정과 파괴는 개인적으로는 수행이요, 사회에 있어서는 개혁이며, 민족의 입장에서는 통일이다. 왜냐하면 부정은 곧 참회(懺悔)이며, 자(自)를 버리고 타(他)를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회의 ‘참’은 지난 과거를 살피는 일이며, ‘회’는 과거의 반성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감을 말한다. 그래서 나[自]를 부정하지 않는 ‘참’은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합리화에 지나지 않으며, 반성이 없는 ‘회’는 일방적 독선이며 아집에 불과하다.


합일(合一)이란 차별 없는 소통을 말한다. 인간은 숨을 쉬지 않으면 몇 분 내 죽는다. 이처럼 ‘공기’와 ‘나’를 구별하고 차별할 수 없으며, 서로의 소통을 통해서 ‘하나’가 된다. 이처럼 남과 북 역시 소통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심합일의 실천은 주(主)와 객(客)에 있어서, 주(主)가 변해야 상대가 되는 객(客)이 변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主)와 객(客) 중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참회가 가능한 주(主)가 되는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이 변해야 우리가 변한다는 논리보다는 우리가 변해야 상대가 되는 북한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역사를 되돌아보는 ‘참’을 통해 민족이 가지는 일심을 찾아내고 통일이라는 ‘회’를 설계하여 민족번영과 인류평화라는 합일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최근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돈 봉투를 내밀면서까지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했다고 폭로했다. 이것은 어찌되었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함을 말한다.

 그런데 천안함·연평도사건에 있어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것처럼 해달라는 요구사항을 보면 통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 이슈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제 더 이상 통일이라는 단어가 이 같은 정치적 목적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붕당의 권력유지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민중 역시 역사라는 시간과 외교와 분단이라는 공간에서 끝없는 자기부정으로 일심합일이라는 새로운 화두로 새로운 통일논의(아젠다)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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