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보선은 몇 가지의 큰 정치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대선 전초전(前哨戰)의 성격을 띠었다. 나경원 후보를 지원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서울시장후보를 양보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의 대리전 양상였다. 링 밖의 스파링은 안철수 교수의 완승으로 매듭 되었다. 3년 9개월만에 선거지원에 나선 박근혜 전대표는 나경원 후보를 위해 선거기간 내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안철수 교수는 투표 이틀전 박원순 후보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 지원의 전부였다. 그러나 안 원장의 한번 출현으로 무려 7~8%포인트의 지지상승이 여론조사 수치로 입증됐다. 24일 방문때 편지로 흑인 인권운동의 계기가 된 ‘로자 파커스사건’을 예로 들며 ‘원칙이 편법과 특권을 이기는 길’을 거론한 게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안 원장의 대선 출마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니 그가 가지고 있는 현재적 가치는 가히 폭발적이다. 박 전대표의 대세론을 일거에 ‘우세론’으로 격하시켰다.
둘째, 무속속 시민후보의 승리가 갖는 상징성이다. 물론 박원순은 범야권 단일후보다. 그러나 무소속이다. 애써 정파적으로 따지면 시민운동그룹 이다. 최근 중동에서 일어난 자스민 혁명 성공의 주역은 조직화된 정치권력집단이 아닌 시민군이고 시민위원회였다. 한사람의 시민은 유약하나 집단화된 시민을 어떤 이해집단도 결코 이길수가 없는 견고함을 가진다. 정의(正義)와 진실(眞實)을 무기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지형의 내일을 예고하는 바로미터다.
셋째, 이번 보선의 특징 중의 특징은 무당파(無黨派)의 부상이다. 어느당도 지지하지 않는 중립지대의 그룹핑(grouping)이다. 소위 무당파(無黨派)의 ‘정치세력화’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무당파(無黨派)의 64.8%가 박원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박후보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당파(無黨派)의 연령대별 분포를 보면, 20대(43.1%), 30대(41.8%), 40대(42.5%), 50대(31.8%), 60대이상(34.6%)가 무당파로 조사되었다. 젊은 세대의 비중이 다소 높으나 각 연령층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40%대에 달한다. 한나라당 32.7%, 민주당 등 야당을 합한 27.4% 지지 보다도 훨씬 높게 나타났다. 정치는 현실이 팩트고 진실이다. 결국 현실정치에서 최대 정파로 등장한 무당파(無黨派)의 향배가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절대 변수가 되었다.
넷째, 노(no)! 제도정치권이다. 10. 27일자 중앙일보는 일면을 ‘정당정치, 쓰나미가 닥치다’로 뽑아 위기에 몰린 제도정치를 상징화 하였다. 한나라당은 기초단체장선거에서 호남을 제외한 8곳에서의 승리를 언덕으로 “무승부”라고 우겨보지만 별무신통이다. 이번 보선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여 내년 총선을 시뮬레이션하면 서울전체 48석 중 고작 7석을 건질 정도다. 동일 비율로 경기 인천을 산정하고 기타지역을 현행대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결과는 참담하다. 비(非)수도권 지역에서의 현재적 우위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정치도미노는 전파속도가 특히 빠르다. 민주당의 속내는 더욱 처참하다. 제1야당이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도 못하고 들러리를 서는 수모를 당했다. 야당사의 전무후무한 역사다. 결과를 가지고 과정을 압축해보면 대안부재(代案不在)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야당에 대한 비토가 더욱 강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면의 속살에서 잉태한 범야권후보의 승리는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계륵(鷄肋)의 형국이다. 승리는 억지춘양이다. 야권통합의 주도권은 이미 시민군이 주도하게 되어있다. 급기야 손학규 대표는 “야권통합이 안되면 내년 대선 불출마(不出馬)”로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승부수를 던졌다. 여야 모두 발등에 불은 이미 떨어졌다.
10·26 서울시장 보걸선거에 대한 중앙일보, YTN, 동아시아 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박원순 후보의 당선요인은 ‘새 정치에 대한 기대’(34.1%), ‘반MB정서’(17.1%), ’안철수 효과(16.9%)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MB를 정점으로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한 거부의 표출이다. 그리고 향후 정치권의 개혁 방안으로 ‘국민과의 소통강화’(51.1%)와 ‘정치권의 인적쇄신’(23.7%)을 꼽았다. 여야 모두 친서민과 복지를 표방했지만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반증이다. 국민의 마음을 정치집단은 제대로 보듬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치 리더들에 대한 신뢰에 균열이 갔음을 인적쇄신 요구로 응답하고 있다. 박근혜 전대표와 안철수 교수의 가상대결에서는 안철수(47.7%)교수가 박근혜(42.6%) 전대표를 앞섰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의 대선출마에 대해서는 ‘않했으면 좋겠다’(50.3%)는 여론이 ‘출마했으면 좋겠다’(28.0%)는 의견보다 월등히 높았다. 미로의 대선 퍼즐게임이다.
서울시장 보선결과는 정치혁명의 여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의 기대 요구는 장대함이 녹아있다. 화답은 정치권의 몫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볼 때 이번 보선 메세지는 간명하다. 생존 위기에 몰린 정치권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변화의 강도는 한계를 가늠키조차 어렵다. 상식으로 말하면 바꿀수 있는 것은 모두 바꿔야 한다. 하우 투(how to)가 문제다. 정치권의 가시적 변화가 미흡할 때 제3세력은 언제나 기동 대기다.
진퇴유곡의 변화 기로에 서있는 한국정치에 브리질의 룰라 전대통령의 멘트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감동적이다. 그는 “정치는 어머님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며 “어머니가 자식들 가운데 가장 약한 아이에 신경을 더 쓰듯, 정치도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사회통합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바라는 건 권력도 아니고, 좌우파 정치도 아니다”라며 젊은이들은 “희망과 자존심, 일자리를 갈망한다”고. 한국정치 내일의 속내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