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의 후보가 된 홍주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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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의 후보가 된 홍주성지
  • 최교성 세례자 요한 <홍주성지 전담 신부>
  • 승인 2021.12.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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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지의 배경은 홍주읍성이다. 과거 홍주읍성은 순교성인을 죄인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손가락질과 비웃음 속에서 거리를 지나가야 했던  그 모든 곳이 성지였다. 지금은 구경삼아 보는 감옥터가 아픈 몸을 가두어놓고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런 거룩한 장소였다. 잘 가꿔진 개울가에 물고기들이 노닐지만, 한때 그곳에서 순교성인들의 피가 흐르던  성지였다.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가  바로 생매장했던 곳이었고, 지금은 14처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어느 신부님이 순례를 마친 후 이렇게 말했다. “성지인 듯한데 마을이 함께 공존하고 마을 인 듯한데 성지가 공존한다. 이곳에서는 순교성인들의 모습과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간 적지 않게 국내와 해외에서 많은 성지 순례를 했다. 각 성지마다 나름 많은 감동과 하느님을 체험했지만 대부분 화려하고 규모가 너무 크고 순례자들도 북적거리곤 했다. 그곳에서 사람 구경과 건물 구경에 넋을 빼앗기곤 한 적이 많았다. 어쩌면 성지순례라기보다는 관광객처럼 ‘무엇을 어디에서 먹을 것인가?’하는 먹거리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고 무사히 돌아오면 끝이었다.

하지만 홍주 성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주변과 어우러져 비 신앙인들에게도 순교자들을 보여준다. 가을날 우연히 찾게 된 홍주성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주변과 어우러져 비 신앙인들에게도 순교자들을 보여주고 있었고, 상가건물 내 몇 평 안 되는 초라한 성당 안에서도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다. 야외 미사를 드리는 곳을 바라보니 푸른 하늘을 지붕 삼고 주변의 나무들과 조선시대 사또가 거주하던 건물이 담이 돼줬고, 제대 주변은 정자와 아주 멋진 한그루의 소나무와 작은 연못이 조화를 이뤘다.”

홍성은   내포를 다스린 홍주목사가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도지사쯤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 시대는 도보나 말이 전부였다. 홍주는 충청도의 왼쪽을 일컫는다.  오른쪽은 공주목사가 다스렸다. 경주, 광주, 청주, 전주 등이 도지사급의 목사가 있던 곳이다.

바로 내포 신암 여사울의 이존창이 충청도의 아브라함이 됐다. 이곳은  개혁을 원하는 실학자가 많았다. 이들은  평등을 꿈꿨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의 섭리로 보인다.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만약, 양반, 쌍놈의 구분이 뚜렷한 조선 초기에 서학이 들어왔다면 씨도 안 먹혔다. 평등의 개념은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천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양반세력이 헐거워지고 그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인들이 양반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족보를 사고 파는 신분의 거래까지 성사됐다. 평등에 대한 강한 열의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바로 그 시기에 서학이 들어왔다. 천주교 초창기는 선비들이 실학을 구하면서 시작됐다. 이벽, 이승훈, 권철신, 이존창, 원시장, 유항검 등이 한국교회의 초창기를 이끌어간 원조들이다. 이들부터 종교의 단계로 진입한다.  서로 세례를 주고받았다.  전 세계의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보통은 선교사가 직접 타국에 가서 전교를 하게 된다. 식민지를 만들고, 점령을 한 후에 전교를 한 것이 많다. 아프리카의 미션 영화가 그 사실을 잘 보여주듯이 말이다. 우리 민족은 남다른  DNA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온 초창기 선교사들은 우리 민족이 마치 천사와 같이 착하고 품위가 있으며 지혜롭다고 기록했다. 선교사가 오기 전에 천주교 신자들은 약 1000~2000명이 됐다. 성서에 진복팔단이 있는데,  그 중에서 입문의 역할은 바로 진리를 사랑하는 맘이다.

인간이 진리를 구하는 맘이 없으면 거의가  ‘잘 먹고 잘사는’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려 가게 돼 있다. 여기서 가까운 청양의 큰 양반이자 조선교회의 2대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는 식구들을 총집합시킨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족보를 나눠준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그 족보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그리고 온 가족이 그날 모든 족보를 다 없애버린다. 그리고 노예들을 다 풀어준다.

깨달음, 구원의 경지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아가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소중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시대의 금수저는 ‘사’자라고 한다면 과거에는 양반들이었다. 양반의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고 과거 급제를 꿈꿨던 것이다. 신분 상승은   모두의 염원이었다.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이 무엇인가? 성서에서 키 작은 자캐오는 자신의 재산을 다 나눠준다. 인간의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으로 향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진리로 충만하게 된다. 부처님 역시 깨달음을 득하고 나눔과 자비를 강조한 것이리라. 인간 육체는 영혼의 지배를 받고 또 그 영혼은 바로 진리를 먹고 산다. 인간이 최고로 행복하고 자존감이 충만할 때가 언제일까? 바로 진리 안에 머무를 때이다. 진리를 먹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즉, 인간의 참 행복은 참된 인간이 되는 데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악인과 착하게 사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구중궁궐의 권력 암투와 시기 질투가 끊임없는 왕궁보다는 초가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행복했으면 목숨까지 마다하지 않고 신앙을 선택했단 말인가?

충청도가 양반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진리를 구하는 선비들이 많았다. 특히 고덕, 덕산에는 전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학자들이 많았다. 고덕의 이가환은 당대 최고의 대학자였다. 이러한 역사 문화의 중심을 이끈 이곳에 천주교도 함께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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