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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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존감
  • 최교성 세례자 요한 <홍주성지 전담 신부>
  • 승인 2022.02.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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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독수리 알이 닭장에 들어오게 됐다. 알이 부화하고 독수리는 닭과 함께 살아갔다. 자신이 새들의 왕이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채, 아니 전혀 의식을 하지 못 한 채 성장했다. 자신은 자신의 눈에 비춰진 옆 동료의 모습이, 즉 닭의 모습이 자신으로 깊이 각인됐다. 독수리 새끼가 어느 정도 커서 하늘을 바라보는 데 독수리가 제왕처럼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저렇게 날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하는 말을 내뱉었다. 옆 동료 닭이 말했다. “우리는 종자가 틀려 우리는 그냥 닭일 뿐이야.” 새끼 독수리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깨달은 날 그는 구원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가르친다. 자신이 신의 자식인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또 다른 부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대오각성을 하는 것이리라. 진정 진리를 신을 만난 사람들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참 자아를 만나는 것이다. 

참 자아는 외부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세상은 자신의 정체를 소유물이나, 직위, 세상 평가, 남의 시선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발버둥 치지만 거기에서는 참 자아를 찾기 힘들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미 독수리 새끼처럼 우리 안에 있는 데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독수리 새끼가 자신이 저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독수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역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소유물도 아니고 사회적인 직위도 아니다. 인간 그 자체로 신적인 존재들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또 다른 부처들이다. 그래서 불교에는 구원이라는 말조차 없다. 이미 자신들이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걸 발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존감은 이 참 자아를 만날 때 생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입방아에 휘둘리지 않는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샘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순교자 다블뤼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느님을 가진 자는 세상을 다 가진 자다. 진리를 만난 사람들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다블뤼 주교의 감동적 일화가 있다. 서양인의 몰골이 조선인들에겐 큰 구경거리였다. 서울에서 대천 갈매못 순교터로 가는 길에, 하도 구경꾼들이 모여들자 옆에 한 신자가 말했다. 주교님 기도도 하시고 묵상도 하시려면 저 무리꾼들이 방해가 되니 베일을 만들어 얼굴을 가려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주교님 왈 “아니다, 저들은 며칠 후에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무섭고 하여 근심하고 있지 않느냐? 순교를 두려워하고 있으니, 이 주교의 얼굴을 보라 늘 담담하고 늘 미소를 머금고 꿋꿋한 나의 신앙을 그들이 보게 해야 한다. 내 이 얼굴을 보면 그들은 다시 용기와 힘을 얻을 것이다.”

이미 다블뤼 주교는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자신 안에 신적인 영혼으로 꽉 차 있어 신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경지에 간 것이었다. 현대의 모든 교육들이 정신과 영혼을 빼내고 돈과 물질을 향해가고 있다. 이건 인간을 망치는 교육이 될 것이다. 인문학과 철학이 사라지면 인간은 영혼 없는 동물적 수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잘 먹고 잘 살면 무엇하는가? 인간의 핵심인 영혼을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먹고사는 존재인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진리를 찾지 못하면 은퇴를 하고 쉽게 죽지도 않는,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지탱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것이다. 참 자아를, 진리를 만나면 소유가 아니라 존재 차원에서 살아가게 된다.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소유와 인간관계 상관없이 자신 안에서 참 행복을 만날 것이다. 참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자존감을 자신의 정체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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