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가영이 사망이래요”… 12시간 만에 나타난 주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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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가영이 사망이래요”… 12시간 만에 나타난 주검
  • 최효진 기자
  • 승인 2023.01.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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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박가영 씨 母 최선미 씨
故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씨.

박가영 씨는 홍주초, 내포중, 홍주고를 졸업하고 목원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박 씨는 지난해 10월 29일 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참사를 당했다. 발인일이었던 11월 1일은 20번째 맞는 생일이기도 했다.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유학을 꿈 꿨던 평범한 대학생 박 씨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유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도 보태겠다며 열심히 학비를 모았다. 

박 씨를 추모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은 목원대 교수는 “두 명의 학생을 교환학생으로 뽑는데 박가영 학생을 꼭 보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당당했던 딸을 떠나보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박 씨의 어머니 최선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어머니, 가영이가 사망이래요!”
그날 가영이는 구급차를 탔어요. 이태원에 함께 놀러 갔던 가영이 친구도 같이 탔죠. 가영이 친구는 구급대원들에게 정확히 ‘이 아이가 박가영’이라는 걸 알리려고 구급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곧장 전화를 한 거예요. 

“어머니, 가영이가 사망이래요!”

대뜸 이렇게 말하길래 ‘네가 지금 되게 놀라서 이러는구나’ 싶어서 “옆에 누구랑 있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구급대원이 전화를 받아서는 제게 “아이가 지금 병원 응급실로 이동하고 있으니 빨리 데리러 와라”라고 하더군요. 새벽 1시 반에 전화가 왔는데, 그때까지도 TV를 안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태원에서 가영이가 교통사고라도 난 줄로만 생각했었죠. 이런 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하고 ‘가영이가 차에 치인 것을 죽었다고 생각(표현) 하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집을 나섰고, 두 시 반쯤 병원에 도착했어요. 
 

■ 검안, 사인, 조서
그렇게 강동 성심병원에 도착한 최선미 씨가 “애를 좀 봐야겠다. 내가 봐야 믿겠다”라고 말했더니 병원 관계자가 경찰이 올 때까지 보여줄 수 없다는 거에요. 

“이미 경찰과 연락했었다니까요! 우리 가영이가 강동 성심병원에 있다고, 경찰이 나한테 연락을 해주기로 했는데, 아이를 찾았다고 우리가 연락했다니까요.” 

경찰이 올 때까지 40분을 기다려서 아이를 봤어요. 그렇게 가영이 시신을 보고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겠다”했더니 “검안하는 의사가 올 때까지 못 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시간 넘게 기다리게 한 후에야 검안을 시작했어요. 근데 또 검사가 와야 된대요. 서명을 해야 된다고 해서 서명을 했어요. 그러고 있는데 “강동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꾸며야 된다”고 하는 거에요. 그 시점에 어떤 부모가 가서 조사를 꾸미고 앉아 있냐고요. “근데 그 과정이 없으면 못 데려가 간다”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5시간을 또 거기서 머물게 했어요. 
 

■ 아이의 수상한 모습
의사가 가영이를 검안할 때 분명히 부모는 동행 안 시켰거든요. 의사가 와서 검안하는 중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검안하는 줄만 알았죠. 나중에 알아보니 부모 동의 하에 입회를 할지 안 할지 여부를 물어보고, 검안을 하는 게 맞는거라고 하더군요. 또 검안 절차 중에 옷을 벗긴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가영이 옷은 분명히 그전에 벗겨져 있었거든요. 제가 어떻게 확인 했냐면 병원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영이 입었던 옷을 돌려줬어요. 속옷까지 다 있었거든요. 그게 시신 처리 방법인 줄 알았어요. 

처음 가영이를 보여주는데 얼굴만 확인하래요. 만지려니까 못 만지게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부모니까 가영이를 만지려고 보니 상의가 벗겨진 상태였어요. 알고보니 옷이 싹 다 벗겨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나중에 ‘CPR하면서 상의가 벗겨졌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전에 검안 절차가 있었던거에요. 검안을 두 번 했다는 얘기죠. 무엇 때문에 검안을 두 번 했을까요? 우리가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죠. 사복경찰이 거기 있었대요. 자기네들이 얘기하잖아요. 마약 수사 경찰들이 거기 있었다고. 그러면 (마약 등의 의심 되서 검안을 미리 했다면) 우리한테 물어봐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검안이고 뭐고 다 해 놓고 정작 자식 찾으러 간 부모는 아이를 보는 데까지 무려 12시간이나 걸린 거예요. 
 

■ 추모공간
유족들이 추모관 설립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중 하나는 이런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용산구청에 설립돼야 하는 것이에요. 적어도 그 용산구에서는 다시는 재발하지 말아야죠. 그 동네 공무원들은 알고 있어야죠. 용산구청 공무원들은 160명 가까이 되는 애들이 그렇게 됐으면 뼈에 새겨야죠. 재발이 안 되게 해야죠. 용산구청으로 들어가는 게 맞죠.

또 하나는 유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요. 이제 내 지인들이랑 가영이 이야기를 못해요. 내가 ‘이 동영상은 너무 재밌는 동영상이야’라고 보여주면 오히려 제가 욕 먹죠. 그래서 유가족 단톡방에 어릴 때 모습, 돌잔치 찍은 사진, 지난해에 엄마한테 생일 때 노래 불러줬던 영상, 아이가 평소에 보내 줬던 영상을 막 올려요. 그러면 우리가 거기다가 ‘좋아요’ 눌러 주고, ‘예뻐요’ 눌러주고, ‘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 해줘요. 이제 우리는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예요.
 

■ 마지막 모습을 찾기 위해
우리 가영이의 마지막 순간까지 간호사들이 CPR을 돌아가면서 했다는 것까지는 알아냈어요. 가영이가 언제까지 숨을 쉬고 있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어느 장소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는지를 알고 싶어요. 제가 이태원을 그렇게 다니면서도 가영이가 어느 장소에서 마지막을 맞았는지 모르니까 환장하겠는 거예요. 우리 가영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아서 그 ‘마지막 모습’을 찾으려고 인터뷰를 하는 겁니다.

그런 마음을 주변에선 몰라요. 전 이 인터뷰를 읽고 나한테 제발 그런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제발 왜 자꾸 나서냐, 너 아니면 나설 사람이 없냐?’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아요. 악플로 고생하고, 상처받아서 내가 더 아플까 봐 그런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내가 답답해요. 가영이가 마지막에 어디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았으면 해요.

“내가 상처받는 건 상관 없어요. 하지만 최소한 부모로서 내 자식에 대해 그정돈 알아야 되지 않나요?”
 

故 박가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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