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 불가능한 ‘석면 피해’… 요양생활수당 2~3년 지급이 전부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수습기자] 석면은 뛰어난 내화성·단열성·절연성·내마모성 등의 특성 덕분에 과거에는 건설업, 자동차 산업, 조선업, 전자·가전제품, 화학 산업, 방음재,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지정 1군 발암 물질로 규정되면서 국내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모든 형태의 석면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석면 가루 흡입 시 최소 15년에서 최대 4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 중피종, 석면폐증 등의 심각한 호흡기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석면의 미세한 섬유가 폐에 침착되면 제거할 수 없어 석면질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만성 질환이다.
석면피해는 원인에 따라 직업성 피해와 환경성 피해로 나뉜다. 직업성 피해는 석면 광산 등 산업 현장에서 석면과 관련된 업무를 통해 질병이 발생한 경우로 이는 산업재해로도 인정된다. 환경성 피해는 석면 관련 일을 하진 않았지만 석면 광산 인근 거주민을 비롯해 환경적으로 석면에 노출돼 질병에 걸린 경우를 말한다.
석면피해자가 속출하던 2010년 당시, 직업성 피해자의 경우 산업재해가 인정돼 질병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던 상당수의 환경성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대책으로 2010년 3월 22일 구제제도 법률이 제정·공포됐다. 이후 2011년 1월 1일부터 석면질병에 걸린 사람 또는 유족을 대상으로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완전한 배·보상이 아닌, 긴급 구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지원 폭이 최소한의 병원비 정도가 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석면질병으로 인해 경제 활동이 어려울 경우, 최저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비용을 지급하는 수준이다.
또한, 석면폐증 2~3급의 경우 지급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 2년 안에 질병이 개선되거나 완치된다면 다행이지만 애석하게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석면 질환은 평생 치료가 필요한 만성 질환이다. 더군다나 홍성지역의 환경성 석면피해자 중 전체의 70~80%가 석면폐증 2~3급에 해당된다. 절대다수의 석면폐증 피해자들이 적은 지급액으로 2년간의 보상밖에는 받지 못하는 것이 석면 구제 제도의 현실이다.
현재 석면 피해가 인정되는 질병으로는 원발성 악성중피종, 원발성 폐암, 미만성 흉막비후, 석면폐증으로 총 4가지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난소암, 후두암 등도 석면에 의한 질환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환경성 피해자들에게는 이 질환들이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으며, 위암도 석면과의 관련성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지난 2011년부터 지금껏, 대략 13년간 석면 피해 인정 질환에 대한 확대가 전혀 없는 상태다.
또 다른 측면을 더해, 여전히 농촌지역에는 노후화돼 군데군데 깨진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석면에 노출되는 과정상의 문제를 바로 잡아야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석면 노출을 예방하는 조치가 상당히 제한돼 있다. 이 또한 석면피해구제법이 해야 할 역할임이 분명하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구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타국가의 좋은 사례가 본보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수준에 맞게 독자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선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실상 석면 피해 구제법을 모티브로 해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보상이 진행된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석면피해자들은 그보다 못한 보상을 받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석면 철거 이후 관리까지 제대로 진행해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어릴 적 석면에 노출돼 지난 2021년 63세에 석면 암인 악성중피종이 발병해 3년간 투병하던 벨기에 석면피해자단체(abeva) 대표, 에릭 존키어(Eric Jonckheere)가 지난달 13일 66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우리에게 에릭 존키어의 부고 소식은 2022년 1월 28일 사망한 정지열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홍성에 거주하며 석면광산에서 일하는 등 오랫동안 석면에 노출된 시절을 보낸 정지열 선생은 석면폐증 2급에서 1급으로, 다시 폐암으로 점차 악화됐으며, 홍성·보령 지역의 석면광산 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석면피해자들을 구제하는데 앞장선 석면 추방 운동가다.
과거 홍성에는 무려 7개의 광산이 있었으며, 이중 광천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광산이 있었던 만큼 국내에서 가장 심각한 석면 피해 지역이다. 홍성군의 석면피해자는 충남권 피해자 2057명 중 절반가량인 1044명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