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경사지廣景寺址 삼층석탑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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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경사지廣景寺址 삼층석탑三層石塔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8.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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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60>

각각의 몸이 무심으로
층층의 한 몸이 완전을 도모하듯
나와 더불어 너는 한 몸이거니
어찌 나를 외면하리오

모름지기 구름 지나면
그늘 만들어 쉼터로 하고
지나는 바람과는 마주하여
차마 흔들릴 수는 없다

슬픔과 괴로움을 다하면
삶의 진실은 절로 알게 되는 것

둘러싸고 있는
모든 바람과도 화목하며
둘레의 구름 살뜰히 버려가는
저 견고한 묵언의 생명체여

홍성읍 소향리 34 홍성여자중학교 교문 입구 안쪽에 자리 잡은 1984년 5월 17일 문화재자료 159호로 지정된 광경사지삼층석탑은 광경사의 옛 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던 3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높이는 230cm이다.

기단부는 지대석(地臺石) 없이 땅위에 직접 하대석(下臺石)을 놓고, 그 위에 4매의 판석(板石)으로 된 중석(中石)과 1매로 이루어진 상대갑석(上臺甲石)을 짜 맞추었다. 기단은 각 면의 중앙과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렸는데, 1층 몸돌이 큰 것에 비해 2·3층 몸돌의 높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석만이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고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탑파(塔婆=塔)는 부처의 사리를 넣기 위해서 돌이나 흙 등을 높게 쌓아올린 무덤을 말한다. 반구형의 탑파는 인도에서 불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무덤 양식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탑파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불교 이전부터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사리탑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탑파는 석가모니가 구시나가라(Kusinagara)의 사라쌍수(沙羅雙樹) 밑에서 열반한 후 그 사리가 8개의 나라로 나누어져 탑파를 쌓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2~3세기 무렵에는 인도 아소카 왕이 8만 4000개의 탑파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탑파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부처의 사리를 안치하는 성스러운 구조물로서 불교의 전파와 함께 각 지역에 세워졌는데 나라와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양식이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유물이 기리는 성인이라는 개념과 동일시되고 또 탑파 자체와 동일시되는 탑파의 기본적 상징성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탑파 숭배는 흔히 해의 진행방향을 따라 탑을 돌면서 걸어가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탑파는 다른 건물 안에 세워지더라도 언제나 독립된 기념물로 간주된다. 중국에서는 전탑, 한국에서는 석탑, 일본에서는 목탑이 각각 발달하여 주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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