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창작과정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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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창작과정의 허실
  • 이재인 칼럼위원
  • 승인 2018.06.21 0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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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아옹’이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이 빤히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거짓 행태를 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욕먹을 작심을 했다. 지금 곳곳에서 ‘문예창작’교실이나 언론사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반’, ‘소설 창작교실’을 운영한다. 이들은 내 글을 보는 순간 좋지 못한 인상을 쓸 것이다. 사실 나는 문학 공부를 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글을 쓰는 비결을 배우겠다고 자원하는 후진들이 있다. 그들은 나한테 희망을 걸고 배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그들한테 창작 기술이나 비법과 같은 방법을 가르친 일이 전혀 없다. 미안한 일이다. 지금 각 대학에 문예창작과나 국문학과 같은 곳에서 소설쓰기나 운문작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면 이는 넌센스다. 다시 말해 잘못 가르친다는 말이다.

글쓰기의 기본 요체는 독서에 있다. 그러니까 독서 지도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글을 잘 쓸 수가 없다. 글을 잘 쓰려는 방법만 가르치겠다고 나선 사람은 일종의 사기꾼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은 글을 읽으므로 내적 충만하도록 유도를 하면 독서하는 그 본인이 기법을 그 텍스트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건너 뛰어 작법을 가르치거나 묘법을 가르친다고 나선 이가 날개도 없는 새가 하늘을 날겠다고 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나는 40년간 교단에서, 강단에서 학생들한테 독서지도를 통해 문학에 이르도록 하는 지도를 했다. 그 효과 탓인지 숱한 문하생이 존재해 그 즐거움을 지금도 나누고 있다. 나는 그 많은 시인, 작가에게 선행해 읽고 그것을 도구로 삼아 문학에 이르도록 권면하고 격려해왔다. 그런데도 문학 입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애숭이 지도자가 무슨 묘법이 있는 것처럼 처세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나는 지금 칠십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다. 지금도 책을 읽고 감상하면서 글을 써오고 있다. 독서가 70%, 쓰는 게 10% 정도다. 그런데 오늘날 문화센터 문화교실이라는 아카데미에서는 덮어놓고 비법이나 창작론을 가르치는 헛수고는 고쳐져야 한다.

많이 읽어야만 창의성도 잉태되고 다양성도 내면에 스미게 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몇 군데 대학이 있다. 그리고 서점도 있다. 서점 주인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이는 그들의 불경기를 체득한지 오래다. 무슨 시인학교, 무슨 작가아카데미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어찌 서점은 파리를 날리고 있어야만 하는가?

조선시대 실학자 청장관 이덕무 선생은 독서를 통해 자신을 확립한 학자다. 그 시대에도 책은 인간이 되게 하는 양식이었고 신분을 바꾸게 하는 사다리이기도 했다. 요즈음 고위 공직자나 학생들이 책 읽는 모습을 공공장소에 보기가 힘들다. 그런 그 분들의 머릿속에서 자기 성취를 위한 간절한 바램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런 희망이 샘솟게 하는 게 독서다.

독서하는 국민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나의 스승 오영수 선생은 유언을 남기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 분의 소설만이 국정 교과서에서 묵언으로 독서를 말씀하고 있다. 어제 서울 지하철 속에서 두 젊은이가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의 등판이 왠지 미덥게 보였다. 그가 군인도 아닌데 말이다.

이재인<충남문학관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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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07:16:05
흠.뉘신지요..쓰셨다는 소설좀 읽어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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