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靜物)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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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靜物)에 대한 고찰
  • 유선자 칼럼위원
  • 승인 2019.02.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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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게 하지 마라. 집에 놓여 있는 많은 정물들은 나의 시간을 지켜본다. 밤을 함께 맞이하고 낮을 함께 지내는 이곳은 나의 집이다. 정물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시간의 영속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물이라고 명명된 저 사물은 적어도 나보다 어쩌면 몇 백 년은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닿으니 시계의 세계에 와 있나 착각이 든다. 시간을 지배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은 나일까, 저 시계일까, 생각이 들자 정물처럼 가만히 있는 저 시계를 앞설 방법도 이길 방법도 무엇 하나 없음에 미력해진다. 

갑자기 바보가 된 듯하다. 과연 인간은 위대한 것인가. 무엇이 저 시계보다 정직하고 분명 할 수 있는가. 시계 밥을 잘 챙겨주는 내 남자는 시간 앞에서 한 수 위인가? 그는 시계나 달력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때만 되면 정확하게 건전지를 갈아 끼워주고 달력을 한 장 넘겨준다. 삶의 흐름을 위해 당신의 심장이 뛰는 한 함께 하는 사물의 심장도 뛰게 한다. 호숫가 앞에 걸려 있는 달력은 매월 다른 얼굴로 산뜻하게 거실을 바라보고 있다. 고맙다는 응답인 듯 시계는 잘 돈다. 한 공간의 정물들이 이 세상에서 어느 한 개인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 쉬게 해 주는 일. 그것은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입장만으로도 사람으로 선행해야 할 정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 모른다. 그런데 시계의 휴식은 언제인가 휴식을 위해 건전지를 빼면 시계의 심장은 멈춰 선다. 초침이 계속 돌아가야 살아 있는 증거인데 휴식을 준다면 멈춰야 한다. 그 멈춰 선만큼 자신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닌다 해도 멈추는 일이 좋을 것이라고 누가 명명할 수 있을 것인가. 휴식과 멈춤은 다름이리라.  

누가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시계는 오늘도 여전히 하루를 넘는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에 따라 벌써 새 날을 맞고 있다. 밤새 똑딱이며 불면을 개의치 않고 일초의 어김도 없다. 시계처럼 날 밤을 제대로 지내 본 적 없는 내가 어떻게 시계를 앞질러 잘 난체 한다는 말인가. 잘 난체 한다는 것은 난 체 할 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성을 기하든가, 아니면 존경 받을 만한 일을 했든가 할 때 가능한 수식어인지도 모른다. 존경은 그만두고 존중받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시계처럼 정확한 박자로 움직이며 산다고 존경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사람사이에 정확성이란 문제는 존경과는 무관하게 개인의 틀에서 돌아가는 일이리라. 정확성을 구하는 사람과 대충 될 대로 살아가는 사람과의 엇박자 사이에도 정확함을 배제하면서 합리화의 시계는 탄생 되는 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존경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엇박자 논리도 틀린 것만도 아니다.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정확하다는 것은 때로는 생각만으로도 질릴 때가 있다. 그 정확성을 시계하고 비교한다면 비교법에 위배된다. 사물과 사물도 아니고 인간과 정물의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계와 시간을 우리 삶에 연결시켜 종종 말한다. 몇 백 년 고장도 나지 않고 건전지만 갈아 넣어 주면 살아 온 시계와 무엇을 말한다는 것인가? 하나의 콘센트 연결만으로도 생명체로 움직이는 그 사물과 무엇을 말한다는 것인가.

신은 사람에게 펌프를 각자의 호흡에 맞게 하나씩 심장으로 매달아 주었다. 개인마다 각기 다른 생체시계, 정신시계를 나눠줬다. 그 시계를 갈고 닦는 일은 개인 몫이다. 심장이 멈추게 되면 사람은 한 순간 정물이되 건전지도 콘센트도 사용하지 못하는 완전한 정물이다. 정물이 되지 않으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은 어쩌면 손목에 시계를 가까이 하는지 모른다. 단지 폼만으로 차고 다닌다면 시계가 우스워 질수도 있다.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 매사  정확히 살겠다는 사람의 각오가 다르다 해도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면서 새해 무엇을 우선 정확하게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좋겠다. 또 다른 움직이는 정물이다.

유선자 <수필가·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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