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거친 땅을 일궈 씨를 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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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거친 땅을 일궈 씨를 뿌려야 한다
  • 현자(광천여중 교사)
  • 승인 2010.02.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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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자(광천여중 교사)
주변 동기들이 승진 준비에 한창 바쁜 것을 보면,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새삼 세상 나이에 멈칫해진다. 변명이랄 것도 없지만, 나는 교직 초년부터 전문직의 길에는 관심이 없었다.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늘 마음속에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숙맥 같은 다짐 외엔, 이제까지 별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요즘 들어 교사의 지도능력을 평가한다 하고, 나이가 들수록 솔직히 아이들과의 공감대가 예전 같지 않음이 느껴질 때면, 내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 싶어 무안해질 때가 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 글쓰기를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오늘 오후 미선이의 전화는, "아니에요, 선생님, 지금처럼 그렇게 걸어가 주세요!" 하고, 처진 내 어깨를 탁! 내려치는 죽비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십여 년 전 지금의 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어릴 적 발자취가 남아있는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남다른 기쁨이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꼭 내 학창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잘못된 행동도 귀여울 때가 많고, 늘 무엇 하나라도 더 줄까, 알게 모르게 내 딴에는 열심히 근무했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둘째 아이까지 딸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쁜 와중에도, 문학 취미가 있는 몇몇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모아 󰡐글이랑󰡑이라고 하는 문학동아리를 창단했다. 교내 지원금은 없던 터라, 간식이며 소소한 운영비는 교사들 자비로 지출했지만, 수업 후 짬을 내서 모임을 갖던 '글이랑'은 틀에 박힌 글쓰기에 싫증이 난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전공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한다는 데서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업 후 빈 교실에서 의자를 빙 둘러 놓고 앉아, 한 주일 동안 써온 각자의 글을 낭독하는 식이였다. 아이들은 당연히 선생님들 앞에서 낭독하기를 쑥스러워했는데, 이렇게 저렇게 마구 얼러서 발표를 시켰고, 교사들도 예외 없이 수업시간 근엄했던 모습이나 능수능란하던 모습과는 달리, 자신의 작품 앞에서는 다들 얼굴이 상기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마른침을 삼키면서 낭독을 했다. 여덟, 아홉은 밑밥을 주듯 칭찬 세례를 하고, 마지막 한 가지씩 의무적인 비평은 선생님들 작품도 예외가 없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과자 봉지를 일부러 뻥뻥 터트려 무마하곤 했다.

미선이는 바로 '글이랑'의 부회장 역할을 하며 벌써부터 탄탄한 글재주가 눈에 띄던 제자였다. 여고에 진학해서도 여러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특히 홍성문협이 주관하는 만해청소년문학상 현상공모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금년 신춘문예에 소설부문으로 당선해 이제 당당히 대한민국 공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런 제자가 그 공을 스승에게 돌릴 때, 이것이야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경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 제자의 성공을 아전인수로 자화자찬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교사는 역시 광야에서, 부지런히 거친 땅을 일구어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단 한 번의 시도일지언정, 전혀 시도를 안 한 것과는 천 길 차이가 난다. 사랑과 열정으로 뿌린 씨앗 중 하나는 언젠가, 어느 구석에선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결실을 맺는다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이런 성과는 그 믿음에 다시 한 번 확신과 용기를 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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