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같은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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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같은 도박
  • 조현정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 승인 2020.09.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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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장마 끝에 찾아온 폭염. 폭염 끝엔 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다리고 인내하면 시원한 바람 부는 가을이 찾아오겠지? 하지만 기다림과 인내는 요즘 청소년에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요행을 바라고 한탕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늘어났다. 진로선택에 있어 중요한 것이 흥미와 적성이 아닌 ‘돈’이 가장 1순위가 됐다. 

학위논문을 쓸 때의 일이다. 주제가 청소년 도박행동과 관련된 논문이여서 청소년의 도박실태와 경험 등을 얻기 위해 문헌을 찾고 설문지를 돌리고 직접 청소년들을 인터뷰했다. 

철수(가명)는 휴대폰과 한 몸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상담 중에 돈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하다 자신의 빚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빗? 빚? 빛? 처음엔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몰랐다. 들어보니 ‘빚’이였다. 정말로 빚이 있냐는 내 질문에 철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외롭고 돈이 벌고 싶었던 어느 날 핸드폰에 무작위로 날라오는 도박관련 광고성 문자를 확인하게 됐다. 그날 이후 온라인 도박에 빠지게 돼 빚을 지게 됐다고 한다. 빚이 약 400만원 정도 됐고, 그걸 갚기 위해 쉬지 않고 계속 알바를 했다고 한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는 험한 일이나 유흥업소 일을 하게 됐단다. 철수는 혼자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어디 계신지조차 모른다. 유년기 청소년 시절에 시설 등을 전전하며 지냈다. 하지만 정착할 수 없었다. 사랑이 많이 고픈 아이, 하지만 그 허기짐을 채우는 옳은 방법을 모르는 아이, 그 아이는 그렇게 핸드폰 세상 속에서 점점 더 마음이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이 무슨 도박을 하겠냐’는 생각은 어른들의 안일한 생각이다. 온라인으로 ‘게임 같은 도박’을 한다. 온라인 도박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그 종류만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스포츠토토, 사다리게임, 달팽이게임, 로하이게임, 가지노류(바카라, 홀짝, 룰렛, 윷놀이 등) 등… 게임의 룰도 간단하다. 핸드폰만 있으면 학교든 집이든 길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카페에서든 편의점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쉽게 할 수 있다. 

청소년기의 도박경험은 문제성 도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인 도박자의 대다수가 청소년기 도박경험이 있다. 심리적 허기를 우연히 가끔씩 주어지는 도박의 보상을 통해 채우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 또한 온라인 도박에 빠지면 일확천금을 꿈꾸고 무책임해지며 도덕관결여 등 올바른 청소년기의 가치관 확립을 저해하고 이런 부정적인 정서는 또래문화의 영향으로 일반청소년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돈을 잃거나 빚을 지게 된 청소년들은 절도나 금품갈취 등의 2차 범죄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놓지 않는 청소년들 중에는 도박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해 어쩔줄 모르고 있는 것 일수도 있음을 생각하자. 나아가 학교에서는 도박관련 예방교육을, 집에서는 자녀의 핸드폰 사용에 대해, 지역에서는 청소년들이 접할 수 있는 유해한 환경에 대한 개선을 위한 노력의 시도가 필요하다. 

기나긴 장마와 폭염을 이겨내고 견디면 시원한 바람의 가을이 나를 반겨준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상담자로서 청소년들의 곁에 있어야 할 이유를 다시 한 번 새긴다.

 

조현정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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