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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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이 주는 교훈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9.02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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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의 폭탄테러와 아비규환, 그곳을 탈출해 각자도생해 보겠다고 공항에 모여든 사람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보여준다. 이 비참한 상황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헬리콥터에 돈 보따리를 싸들고 일찌감치 카불공항을 빠져나간 뒤 발생했다. 카불공항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소환해 보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피신을 떠났고, 구한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서울을 서둘러 떠났다. 서울을 사수하겠다던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국민은 처참한 꼴을 당해야 했다. 지금도 권력자, 힘 있는 자의 이름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보다는 부동산 투기자 명단에서 쉽게 발견 된다. 나라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오히려 힘없고 고통받았던 피지배 계급들이 금반지를 모으고, 의병을 조직해 나라를 지켜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 숙청을 피해 아버지와 미국으로 망명해 소설가가 됐다. 그도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었더라면 탈레반의 폭정에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는 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를 발표해 미국에서 일약 유명작가가 되고, 이 작품은 미국에서 2005년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되기도 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주인공 아미르는 하인이자 의붓동생 하산의 죽음을 미국에서 알게 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다시 약탈과 학살이 난무하는 카불을 찾게 된다. 아미르는 하산에게 지난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질렀던 죄악을 반성하고 미국에서 새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칙칙한 회색빛 도시에 평화가 쉽게 찾아오기 어려워 보이는 것은 여러 부족들이 정치적으로 화합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민족들이 모여 통일 국가를 이룬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같은 민족끼리도 지역색을 드러내며 피터지게 싸우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한반도의 세배 정도의 크기이고, 여러 개의 종족이 6개 국가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종교 이외에 동질성을 찾기 어려운 나라다. 이 나라를 침공해 자기나라에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려고 했던 영국, 소련, 미국이 모두 상처를 입고 철수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통일된 정부를 세우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미국은 무능한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더 이상 동맹을 유지할 의미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분열하는 국민, 보잘것없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와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그런 현실적 고민 끝에 미국이 내린 결정은 미군 철수였고,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는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 국가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서가 통합돼야 하고, 정치가 부패하지 말아야 하고, 경제가 추락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동맹국에게는 상호이익(mutual interest)이 된다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근본적으로 국가를 방어할 능력도 부족하면서 북한의 비위를 맞추느라 허둥대며 누가 적인지 헷갈리는 군대, 한미연합훈련 전면중단, 전작권 환수, 종전선언을 선언하며 ‘주한미군 물러가라’고 외치는 무례함, 이것은 손을 잡고 있던 동맹국이 회의에 빠져들게 하는 동인(動因)이 되게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무능과 부패에 손들고 떠나는 미국을 바라보며, 우리 일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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