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보내며, 제안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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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보내며, 제안 한 가지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3.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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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서울 다녀오는 길 용산역, 열차를 기다리는데 어느 분이 대뜸 “불살생을 첫 번째 계율로 삼고 있는 스님들이 살인을 할 수 있겠습니까?”하며 부득부득 자리 잡고 앉았다. 답하기를 “스님이 아니라 누구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되지요.”했더니, 이번에는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까?”하고 받아쳤다. 나름 준비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물에 빠진 여인을 건져 입을 맞춰 인공호흡을 했다 해서 욕정에 빠지지 말고, 언제나 청정함에 머무르라는 불사음계(不邪淫戒)를 범한 것이 아니다.

계율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목적이 있다. 불살생은 생명을 살리는데 과녁이 있는 만큼, 사명은 전쟁을 막아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라는 물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지듯 나라를 잃어버리면 백성들은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고 노예로 전락하며 결국 소멸의 길을 걷는다.

임진(정유)왜란을 겪은 후에도 조선의 기득권들은 나라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살피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신출세와 권력 유지의 논공행상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 반해 전쟁에 참전했고 국내외정세를 정확히 파악해 조선의 부흥을 꿈꾸는 광해군은 개혁을 단행했다. 위기를 느낀 서인들은 세금과 토지에 관한 대동법, 군역에 관한 호패법, 만주에서 성장한 후금(後金)을 인정하는 외교 관계 등이 성리학적 윤리관에서 벗어난 패륜적 행위라는 명분을 내세워 인조반정을 성공으로 이끈다. 

인조반정의 본질은 영화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군의 개혁은 (기득권자의)진짜 왕이 아니라 백성이 왕(가짜 왕)이 됐을 때만 가능한, 백성들을 위한 정책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듯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란이었다. 결국 서인들의 무능한 외교정책은 정묘, 병자호란을 자초했으며,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인조는 농성(籠城) 59일 만에 삼전도에서 ‘세 번 절 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례’의 굴욕적 항복을 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탐욕으로 삼정문란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고 마침내 참다못한 백성들은 동학혁명을 일으켰다. 이에 기득권들은 또다시 외세를 끌어들여 백성들을 도륙했고 그 대가는 한일합방의 경술국치라는 민족역사에서 처음이자 최악의 사건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나라를 빼앗긴 수치와 아픔은 백성들에게만 있었을 뿐, 개인의 영달을 꿈꾸는 일군의 기득권들은 일제의 주구(走狗)가 됐고, 지금현재 우리는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조의 현실을 강요당하고 있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의 역사는 미국의 이익과 손잡으며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는 반공의 승리로 둔갑했고, 엄청난 자본력과 권력을 거머쥔 그들은 마지막 양심마저 벗어던지고 일말의 부끄럼 없이 민족과 국가발전의 주역이라며 전면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김구 선생께서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배신자를 백 번 천 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라고 했듯이 일 만년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은 청산하지 못한 친일부역의 역사이다. 왜냐하면 두 번 다시없어야겠지만 만약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청산하지 못한 호위호식의 친일부역의 역사’가 민중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이후 3·1절 공식행사가 없는 만해사당, 올해도 촛불은커녕 굳게 잠긴 문을 열고 만감이 교차하는 참회의 절을 올렸다. 만해를 주제로 각종 공모사업 등이 있었고, 관련 지자체들은 연계된 사업을 하면서도 정작 3·1절 행사를 등한시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길 없다. 어떤 사건의 기념물들은 그것을 상기하고, 지키고, 이어가는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독립운동의 시원인 우리 홍성군이 앞장서서 만해사당뿐만 아니라 우리 군에 위치해 있는 모든 기념물들에 그 사건을 기리는 날 하루만이라도 단체장의 꽃바구니 하나쯤 놓였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제안을 해본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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