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못 지킨 ‘광천김’… ‘상표’ 아무나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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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못 지킨 ‘광천김’… ‘상표’ 아무나 쓸 수 있다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3.12.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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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716호(2021년 12월 2일자 1면) ‘광천김, 분쟁으로 상표권 상실 위기’·775호(2023년 2월 9일자 3면) ‘끝나지 않는 광천김 상표권 분쟁… 난감한 홍성군’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홍성의 대표 특산품인 ‘광천김’에 대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취소가 확정되면서 다른 지역의 김 업체에서도 ‘광천김’이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제도가 실시된 지난 2005년 이후 단체표장 등록이 법원 판단에 따라 취소된 첫 사례로 남게 됐다.

발단은 지난 2020년경 국내 대형마트에서 충북 소재 김 제조업체인 A사가 상품명으로 ‘광천김’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 광천김조합 소속 B사가 해당 마트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마트에서 철수하게 된 A사가 B사 역시 광천읍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으며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을 소유한 광천김조합을 상대로 같은 해 11월 특허심판원에 ‘광천김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특허등록 무효 및 취소심판’을 청구했다.

A사는 △정관에 규정된 조미구이 김의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등 구 상표법상 ‘소속 단체원이 단체 정관에 위반해 단체표장을 사용함으로써 수요자로 하여금 상품의 품질 또는 지리적 출처에 관해 오인을 초래한 경우’에 해당하고 △본점이나 주요 공장이 광천읍에 소재하지 않는 자에게 조합 가입을 허용해 ‘지리적 표시를 사용할 수 없는 자에 대해 단체 가입을 허용한 경우’에 해당하고 △지정상품인 조미구이 김이 아닌 유사한 김밥 김에 사용해 ‘상표권자가 고의로 지정상품에 등록상품과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거나 지정상품과 유사한 상품에 등록상표 또는 유사한 상표를 사용함으로써 수요자로 하여금 상품의 품질의 오인을 생기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판원은 A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불복한 A사는 같은 취지로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특허법원 4-2부(정택수, 이숙연, 이지영 고법판사)는 지난달 8일 충북 소재 김 제조업체인 A사가 광천김영어조합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등록취소소송(2022허5690)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은 광천김조합이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이란 상표법 제2조 1항에 의거해 지리적 표시를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제조 또는 가공하는 자가 공동으로 설립한 법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그 소속 단체원에게 사용하게 하기 위한 표장을 말한다.

상품의 품질과 명성, 그 밖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특정 지역의 지리적 근원에서 비롯되는 경우 산지 또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 등에 해당하는 상표라도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을 등록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권자 또는 그 소속 단체원의 영업상 신용유지를 도모하는 제도다.

광천김조합은 지난 2014년 7월 ‘광천김’ 표장에 대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을 등록하고 조합원들이 단체표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정상품은 조미구이 김이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조미구이 김을 비롯해 김자반, 김밥김, 구운 감태 등 다양한 상품에 사용했다.

재판부는 ‘광천김’ 표장을 유사 제품인 김자반, 김 가루, 김밥 김 등에도 사용한 것을 ‘상표의 부정 사용’으로 판단했다. 수요자에 대한 오인·혼동을 초래했다고 본 것이다. 또한 일부 조합원이 정관 규정을 위반해 국내산이 아닌 외국산 천일염과 참기름을 사용하면서도, 조합이 이를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일반 수요자와 거래자들은 단체등록상표가 사용된 상품은 광천김조합 정관 등에서 규정하는 품질관리 기준에 맞춰 생산됐다고 믿을 것으로 보인다”며 “단체등록상표권자인 조합이 단체등록상표의 사용실태를 정기적으로 감독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실질적으로 그 지배하에 두고 있었다고 평가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조합원 아닌 제3자가 ‘광천김’ 표현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합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수요자를 오인하게 해 그 등록이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리적 단체표장이 제품에 사용되는 경우 일반 소비자나 거래자들은 해당 지리적 표시를 사용할 수 있는 단체의 구성원이 상품을 생산, 제조 또는 가공했을 것으로 인식할 것이므로 소속 단체원이 아닌 자가 지리적 단체표장을 무단으로 사용한다면 품질에 대한 오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그러나 조합은 무단 사용을 막았다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어 상표법 제119조 제1항 제7호 다목에 따라 등록이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광천김’은 해당 표장의 등록이 취소돼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상태가 됐다. 광천김은 지난해 70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해 해양수산부 공로탑을 받는 등 충남 대표 수출 상품으로 인정받던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상균 광천김조합장은 “‘광천김’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과정에서 정관에 나열된 세부 내용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올해 초 광천김 조합들을 어렵게 통합하는 과정 등을 거치며 체계적인 운영이 되지 못했던 것들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 같다”면서 대법원 판결이 뒤집힐 확률이 극히 낮다고 판단해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며 “‘취소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무효소송’에서는 광천김의 명성을 인정받으며 승소한 것에 힘입어 우리지역 대표 특산품인 ‘광천김’에 대한 명성과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표장 재출원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성군청 해양수산과 어촌산업팀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관(官)이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조합에서 재출원 추진을 검토 중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지역 동종업체에서 ‘광천김’이라는 상표를 사용하지 않게끔 최대한 빨리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을 세워 행정적인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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