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충청도 아산땅에 오한섭이라는 젊은 농사꾼이 살았구나. 본래 천성이 착실하여 이웃에 평판 좋고, 소처럼 일만 알아 허리 펼 줄을 모르더니, 이 고을의 관청에서도 그의 사람됨을 알았는지 영농후계자로 삼았구나./그러나 이 막된 세상에 거친 땅 한 뙈기에 젊은 육신 하나뿐인 밑천으로 어찌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가 있겠는가? 산 입에 거미줄 안 치겠노라고 빚 얻어서 송아지 사고, 밤낮으로 쇠똥에 파묻혀서 소 키우기 한두 철이 아니었구나. 그렇지만 어느 때고 한 손에 나라 권력을 다 거머쥔 나으리들치고 무지렁이 농사꾼을 사람 취급한 적이 있었던가? 언제는 인심 쓰는 척 빚 주면서 집집마다 송아지 키우라더니,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격으로 미국 쇠고기 대량수입이라./이런 판에 소값이 개값이 되고, 쇠똥 묻은 농사꾼들이 우수수 망하는 것이야 정한 이치이니, 영락없이 젊은 오한섭이도 하루아침에 망했구나. 제기랄, 사시사철 놀고먹는 놈들은 주지육림에 배 터지고, 일하는 농사꾼은 빚더미 위에 또 빚더미라./마침내 이 젊은이 주먹을 들어 가슴을 치고, 그 통분을 못 이긴 끝에 이 나라 모든 농사꾼들에게 ‘속지 말라’고 유서 쓰고, 농약 한 병 들이켜고 아까운 목숨을 끊었구나.”
1960년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재학 중 4·19혁명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제적됐으며, 1975년 유신 정권을 비판하는 시 ‘겨울 공화국’을 발표, 교사직에서 파면되었으며, 1977년 박정희 독재정권 비판 시 ‘노예 수첩’을 발표, 긴급조치 9호 위반과 국가모독죄로 수감 되었던 양성우 시인이 1987년 출판사 ‘창작사’에서 아홉 번째 시집 <그대의 하늘길>을 ‘창비시선’ 63번째로 출간했다. 글머리에 소개한 시는 시집에 실린 시 ‘농사꾼 오한섭전’ 전문이다.

‘1985년도 신동엽창작기금’을 지원받아 출간한 시집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농촌노동운동과 도시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주 민족 운동 등 이 땅의 민주화 투쟁에 헌신 희생한 열사들을 기리며, 거울삼아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변혁의 정서로 승화시킨 서정 시편들로 가득 채워졌다.
시집에 대해 소설가 황석영은 ‘넋풀이, 그리고 외로운 중년’이라는 제목의 발문에서 “나는 그의 노래가 대단히 깊은 저 대지의 밑바닥에서부터 샘물처럼 길어져서 퍼 올려 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했으며,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뒤표지 글에서 “그는 우리 시대 민중문학의 저음 가수다. 그 차분하고 무거우며 안정된 목소리는 변혁기의 불안을 말끔히 씻은 채 굳은 역사적 신념을 다그쳐 준다. 영혼의 상처인 우리 시대의 한을 변혁에의 의지로 치닫게 하는 이 저음 가수의 노래에서 우리는 새삼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고 논했다.
1943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한 시인은 제적당한 후 편입한 함평군 학다리고등학교와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70년 <시인>지에 시 ‘발상법’, ‘증언’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발상법>, <신하여 신하여>, <겨울공화국>, <북치는 앉은뱅이>,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낙화>, <노예수첩>, <5월제>, <그대의 하늘길>, <세상의 한가운데>, <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 <첫마음>, <물고기 한 마리>, <길에서 시를 줍다>, <아침 꽃잎>,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 <압록강 생각>, <꽃의 일생> 등과, 평전 <양성우의 인간탐구-삶>, 에세이 집 <지금 나에게도 시간을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가 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제13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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