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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7.31 07:28
  • 호수 902호 (2025년 07월 31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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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변승기</strong><br>홍성군청소년수련관장<br>​​​​​​​칼럼·독자위원
변승기
홍성군청소년수련관장
칼럼·독자위원

‘0’이란 무엇일까? 예전 사람들은 수 많은 고민을 했다. ‘수’라고 하는 것은 처음에 ‘개수’를 세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배드민턴 라켓이 없다’라고 하지, ‘0개의 배드민턴 라켓’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보면 1, 2, 3… 9와는 달리 0은 확실히 다른 개념으로 보긴 해야 한다. 0을 사용함으로써 좋은 점은 적은 기호로 큰 숫자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숫자 0을 사용하면 10,000… 100,000… 1,000,000,000 등 새로운 기호나 단어 없이도 얼마든지 큰 수를 나타낼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보호자나 학교에서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나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볼 때도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청소년을 대하는 것에 역시 혼란스러워 한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는 것처럼, 어려움이 있으면 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도 답을 찾는 중인 것 같다. 몇 가지 찾은 답은 효과가 있지만 모든 청소년에게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상담, 보호자교육, 청소년 안전망의 확대, 학교 밖 청소년 관리 프로그램, 술, 담배, 마약(약물)에 대한 법제화, 학교에서 행해지는 법정 의무 교육, 인권, 쉼터 등 이미 많은 것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것이 청소년 관련 이슈다.

청소년은 폭주 기관차 같기도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여름철 날씨 같기도 하다. 기준을 잡기도 어렵고 청소년이 보여주는 언행에는 일관성, 보편성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몇몇 학자들은 청소년은 판단을 주관하는 뇌의 전두엽이 아직 성장 중이라서 그런 언행을 보인다고 한다.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기다리는 동안 너무 많은 위험한 일이 발생해 지켜보는 성인들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해서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지만, 막상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청소년의 자극적인 언행을 직접 보면, 어떤 사람은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청소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포기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순간적인 감정으로 그들을 볼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성인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삶의 늦은 시기에 꽃을 피운 사람들이 있다. 운동선수들이 은퇴를 생각하는 35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짐 모리스, 40대에 소설가 데뷔한 박완서, 44세에 월마트 1호점 오픈한 샘 월튼, 46세에 가수로 데뷔한 장사익, 65세에 KFC 창업한 커널 샌더스, 78세에 그림을 시작한 그랜마 모지스 등이다. 

인생은 곱셈이라고 한다. 어떤 기회가 와도 내가 0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이 0은 아니었기에 자신이 꿈꾸었던 꿈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할 수 있었고 인고의 세월 끝에 꽃을 피우게 됐다.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건강을 유지 못하는 것, 범죄에 연루돼 지속적으로 교정시설에 가게 되는 것, 마약(약물)중독으로 일상생활이 마비되는 것, 자신감과 자존감의 상실로 무기력하게 돼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것 등이 바로 0이 되는 환경이다. 

청소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하는 것은 우리의 바람이지 현실적이지 않다. 대신에 0이 되지 않도록 하고, 최대한 1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 1이 되면 인생 곱셈에 적용하면 최소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따라갈 수 있다. 곱셈의 1은 상대방의 숫자를 따라가니까. 

청소년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민간단체가 여러 곳 있다. 더 많은 단체가 구성돼 지속적으로 중복되게 지원하면 아주 서서히 변화가 생길 것이다. 변화는 직접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주변인에게 작게 보인다. 그 작은 변화가 생기고 일정 시간만 견뎌준다면, 이타적이고 사회에 꼭 필요한 성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수학사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한 숫자 ‘0’의 발견, 그러나 이 0이 청소년에게 1이 될 때까지 다양한 시도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답을 구해보자. 주변에 밝은 청소년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분명 그들에게 꼭 필요한 답을 찾은 것이다. 답에 근접해 가면 갈수록, 0을 넘어 1로 향해 가는 힘들고 지친 얼굴의 성인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 과정을 위해서는 사회와 성인의 고통과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성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청소년의 변화를 위해서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성인만 인내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청소년기를 걷고 있는 그들도 나름대로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즉 청소년도 0이 나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스스로 0이 안 되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단지 우리 눈에 다르게 보일 뿐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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